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얼마 전 우연히 김영하의 작품은 무조건 좋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찾아본 인터넷 서점에서 김영하의 작품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고양이를 가슴에 않고 있는 도회적이고 소위 범생 모습의 말쑥한 프로필 사진은 그동안 소설가에 대한 선험지식과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에 선뜻 책을 선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입견도 부담 없는 책의 두께 앞에선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 책은 1996년에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당시 '문제작'이었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살'과 '자살 청부업자'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2003년에는 정보석, 추상미가 주연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니 그 '문제'에 대한 관심과 그 인기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어둡고 등장인물들 역시 활력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힘들고 지친 영혼들입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 주도적이지 못하며 그저 강물에 몸을 맡기듯 떠내려갑니다. 그럼에도 다분 철학적이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고통받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C와 K 그리고 유디트와 미미가 그렇습니다.
죽음에 대해 어떤 환상까지 심어주는 듯한 이 소설에서 작가 김영하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저 현실보다는 다소 비현실에 치우친 몽환적인 삶에 허우적대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자칫 죽음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문제작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 이상의 작가적 의도를 파악하기엔 얕은 내공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참고로 이 소설에서는 죽음을 다루는 작품 3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르다나팔의 죽음>이 그것입니다. 명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전에 그 작품의 존재에 대한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설이 다루는 주제와 제법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니스에서 만난 중국 여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뭔가 미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을 다 읽고 느낀점은 짧고 굵다는 느낌입니다. 여전히 '문제작'이란 말은 흥미를 끌만한 상업적 수사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제 김영하 작가의 첫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의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캔버스 유채, 브뤼셀 왕립미술관
"1793년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을 본다. 욕조 속에서 자코뱅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는 터번처럼 생긴 수건을 두르고 있고 욕조 밖으로 늘어뜨려진 손은 펜을 쥐고 있다. 흰색과 청색 사이에 마라가 피를 흘리며 절명해 있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정적이다. 어디선가 레퀴엠이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를 찌른 칼은 화면 아래 쪽에 배치되어 있다. 나는 이미 여러차례 그 그림을 모사해보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라의 표정이다. 내가 그린 마라는 너무 편안해 보여서 문제다. 다비드의 마라에게선 불의의 기습을 당한 젊은 혁명가의 억울함도, 세상 번뇌에서 벗어난 자의 후련함도 보이지 않는다.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던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은 가장 먼저 마라의 얼굴에 머문다. 표정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선은 크게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쪽 팔에 들려진 편지로 시선이 옮겨지거나 아니면 욕조 밖으로 비어져나와 늘어진 다른 팔을 따라간다. 죽은 마라는 편지와 펜, 이 두 사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거짓 편지를 핑계로 접근한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된 마라는 답장을 쓰려다 살해되었다. 마라가 끝까지 움켜쥔 펜이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긴장을 부여한다. 다비드는 멋지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
마라를 죽인 샬롯 코데이라는 여자도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롱드 당의 청년당원이었던 샬롯 코데이는 자코뱅의 마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거짓 편지를 미끼로 접근, 목욕중인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1793년 7월 13일의 일이었고 그때 그녀는 나이 스물 다섯이었다. 사건 직후 체포된 확신범 코데이는 나흘만인 7월 17일 목이 잘렸다. 자코뱅 당의 거두였던 마라가 죽은 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다비드는 자코뱅의 미학을 알고 있었다. 공포라는 연료 없이 혁명은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힌다. 공포를 위해 혁명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공포를 창출하는 자는 초연해야 한다. 자신이 유포한 공포의 에너지가 종국엔 그 자신마저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렸다."
클림트의 <유디트>
캔버스에 유채, 84 x 42cm, 벨베데레 미술관 (1901년, 비엔나)
"검은 머리가 비현실적으로 크게 부풀려져 있고 그 배경으로는 평면적 문양들이 금색으로 장식되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그리고 눈. 붉게 상기된 볼과 대조적으로 눈은 뜨는 듯 하는 듯 세상을 내려보고 있다.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직전, 그 느낌의 근원을 탐색하려는 눈빛이다. 입술은 살짝 벌려져 있어 긴장이 풀려 있음을 보여준다. 풀어헤쳐진 앞가슴은 살색이 아니라 푸른빛이다. 뭉개듯이 은은하게 비추어내는 푸른빛은 죽음의 기운이다. 그래서 유디트의 육체는 시체로 보인다. 시체치고는 너무 매혹적이다 (아니면 시체이기에 더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왼쪽 팔로는 그녀가 베어버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눈을 감은 채 죽어 있다.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와 섹스를 하다가 목을 베었다. 그런데 목을 벤 후에도 정염의 여운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목을 베는 순간 비로소 오르가슴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다."
들라크루아의 <사르나다팔의 죽음>
"나는 낭만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그들은 감정이 과잉되어 있다. 그렇지만 들라크루아의 이 작품만은 좋아한다. [사르다나팔의 죽음]. 성도의 함락을 눈앞에 둔 바빌로니아의 왕이 무사들을 시켜 그의 왕비와 애첩들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한 건장한 무사가 냉정한 표정으로 몸을 한껏 젖힌 전라의 여인을 등뒤에서 껴안고 위로부터 수직으로 칼을 내리꽂고 있다. 가로 5미터, 세로 4미터의 화면은 살육의 잔치로 가득하다. 화면 왼쪽에는 왕의 애마를 끌어내는 흑인 무사의 모습이 보인다. 말도 곧 살해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낭만주의의 화려함 때문에 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서 이 모든 광경을 관조하는 자가 있다. 그는 바빌로니아의 왕 사르다나팔이다. 왕은 팔베개를 한 채로 자신의 애마와 애첩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피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제일 마지막에야 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화면의 구석에 어두운 색조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살육 장면들은 환하고 밝게 묘사되어 있고 게다가 살해되는 여자들은 나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사르다나팔 왕을 발견하게 되는 관람자들은 숨을 죽이게 마련이다. 냉정하게 자신의 패배를 지켜보는 왕과 몸을 뒤틀며 죽어가는 여인들의 대조가 이 그림의 백미이다. 이 광란의 무도회를 지켜보는 사르다나팔 왕은 들라크루아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감정이입하게 되는 인물은 들라크루아가 아닌 바로 사르다나팔이다. 멸망해가는 바빌로니아에서 죽음의 향연을 벌여야 하는 비운의 왕 말이다. 같은 소재를 3류 화가가 그렸다면 아마도 사르다나팔이 자기 머리를 두 팔로 감싸며 비통해하는 것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알고 있었으리라. 죽음을 주재하는 자의 내면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