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문학동네
적어도 아직은 책을 읽으면 막연한 의무감에 서평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블로그의 '짧은 서평' 이라는 말머리와 함께 올리는 글 대다수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하루 이틀 안에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니는 단어 중 가장 굵직한 것 몇 개를 붙잡아 끼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너무 개인적이면 발전이 없다는 생각에 일단 누군가가 봐준다는 가정하에 적당히 작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 읽은 후 머릿속에 남아 부유하는 단어들을 억지로 떠올려도 많지 않은 책들이 있습니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재미 위주의 글이 그 중 하나일 것인데 바로 이 책 《고령화 가족》이 그 범주에 속합니다. 그런 책들은 가볍게 즐겨도 되겠지하는 마음에 처음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텍스트는 빠른 속도로 흡입되어 머릿속에서 완전 연소됩니다. 그래선지 읽으면서 기분 좋은 즐김을 선물해주지만, 막상 책을 덮고 서평이라도 끼적일라치면 머릿속에 부유하는 단어가 없다는 점에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사실 이 책은 《고래》를 읽고 각인된 이름 천명관이란 사실만으로 일말의 의심 없이 선택한 책입니다. 역시 서민체! 로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읽히고 재미있지만,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만큼 《고래》라는 작품의 인상이 워낙 강했던 터라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책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평균나이 45세의 '이보다 더 콩가루일 수는 없다' 싶은 집안을 배경으로 다소 영화에서 있을법한 일들이 펼쳐집니다. 독자는 그러한 가족의 좌충우돌 벌어지는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웃다가 "그래 인생 뭐 있어? 죽으란 법은 없고 살다 보면 그럭저럭 살아가는 법이지.." 라며 현실의 삶 대해 더 감사하게 하는 책이랄까요...
화자(話者)는 자존심을 버리고 에로영화를 찍는 오감독입니다. 그래선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영화적이고 그래서 적당히 맥락을 뛰어넘으며 빠른 전개를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한다면 편력을 넘어 다소 편집적이라고 할 만큼 헤밍웨이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다소 전달력이 떨어졌지만, 정작 작가 헤밍웨이의 삶에 대한 공부 욕구를 심어주기엔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