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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최인호의 《달콤한 인생》 - 길 없는 길에서 찾는 길...[2012년 8월 알라딘 TTB 이달의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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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최인호 지음/문학동네

   

 

 "현실의 상징적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동시대의 현실에서 찾기 곤란할 때 옛 신화나 설화의 상상 공간에서 그 힘을 빌려오고자 했던 사례는 근대 모더니즘 이후의 세계문학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비록 현실에 길이 없더라도, 길 없는 길에서 길 찾는 길은 무한히 많은 법이다. 길은 없으면서 있다. 길이 없더라도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 그래서 길은 있다. 작가 최인호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길을 내며 길을 걸어온 상상의 나그네다."

 

함께 수록된 문학평론가 서강대 우찬재 교수의 평론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공감이 갑니다. 이 책 최인호의 《달콤한 인생》은 천주교와 불교적 분위기 속에서 적요하게 풀어낸 단편을 비롯하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설화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싶더니 이내 70년대 길을 잃은 영혼들이 미국을 헤매는 풍경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그냥 끝내기 아쉬웠는지 작은 분량의 다소 꿈꾸는 듯한 단편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적잖은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소설 사이를 흐르는 기운에 이질감은 없습니다. 즉,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이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과정을 때로는 종교를 통해서 때로는 설화를 통해서 때로는 현실과 결합한 다소 판타지한 느낌으로 각각 변조되어 각각의 소설 속에 녹아 있습니다.


낙태한 여인을 위한 다비장을 준비하던 법운의 이야기인 <산문(山門)>를 비롯하여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 노래가 귓전을 맴돌던 슬픈 '아랑'의 이야기를 다룬 <몽유도원도>, 지친 영혼들의 망명기인 <깊고 푸른 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몽유도원도>에서 도미가 죽음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권커니잣거니 하면서 합주(合酒)를 하고 남편인 도미는 피리를 불고 아랑은 춤사위를 펼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오래도록 뇌리에 머뭅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사실 개로왕의 "한갓 꿈속에서 본 도원경(桃源境)을 현실에서 찾기 위해 헤매는 몽유병(夢遊病)의 꿈놀이"입니다. 개로왕인 여경의 한낮 꿈놀이에 휩쓸린 불쌍한 아랑부부 하지만 정작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비극의 헤로인은 개로왕인 여경 그 자신인 셈입니다.



<산문(山門)>은 또 어떤가요? 낙태한 여인이 찾아와 법운에게 천도재를 부탁합니다. 천도재는 죽은 사람을 위한 제사라기보다는 망자에 대한 막연한 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한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제사입니다. 법운은 그 여인이 낙태시킨 갓난아이의 영혼을 달래주는 다비장을 진행하면서 그 역시 상처받은 영혼이었고 그 여인의 모습에서 비참한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를 보게 됩니다. 결국, 낙태한 아이의 천도재는 법운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는 진혼재이기도 했습니다.


독특한 개성은 느끼지 못했지만 가볍게 그리고 스타카토처럼 끊어진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거기에 남다른 상상력은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특히 길잃은 영혼들의 이야기로 마치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후반부를 연상시키기도 했던 <깊고 푸른 밤>에서 일몰을 '태양의 임종'으로 표현한 제법 맛깔스러운 글이 있어 아래에 옮겨 보겠습니다.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한낮을 지배했던 태양의 제왕은 왕좌에서 물러나기 시작한다. 빛을 모반하는 저녁노을이 혁명을 일으켜 피와 같은 붉은 노을을 깃발처럼 드리운다. 파도가 한결 높아진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점점 뚜렷해진다. 태양은 마침내 임종을 맞았지만 그의 후광을 온 누리에 떨치고 있다. 하늘은 저문 태양의 마지막 각혈로 붉게 물들어 있다. 어둠이 새앙쥐처럼 빛의 문턱을 갉아내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초조(初潮)와 같은 피의 여광을 갉아내리는 어둠의 구멍으로 수술대 위에 올라선 마취 환자의 잃어가는 의식처럼 점점 사라져간다. 그것은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태양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황금의 빛과 노을은 한데 섞여서 거대한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의 군대들이 몰락해가는 하늘의 왕국을 향해 집중적으로 포화를 쏘아올리고 있다. 터진 포탄의 불꽃이 하늘의 어둠 속에 점화되어 폭발하고 있다. 빛의 파편이 깨어져 흩어진다."

 

요즘은 단편소설집을 읽기가 버겁습니다. 책을 읽으면 의도적으로 꼭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박완서의 단편소설 전집을 내리읽고 - 아직 마지막 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단편소설 읽기의 대장정... -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또 이렇게 단편소설집을 붙잡고 서평까지 끼적이고 있으니 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작가의 말대로 "단편소설은 문학의 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꽃이 지면 또 그립잖습니까?



여하튼 책을 다 읽고서 잠시 생각해봅니다. 인생이란 정말 달콤한 걸까? 내게도 수호천사가 있는 걸까?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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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알라딘 TTB 이달의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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