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라는. 너는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금까지도. 엄마라고 부를 때의 너의 마음에는 엄마가 건강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었다.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으며 엄마는 이 도시에서 네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존재라고. (26-27쪽)"
저 또한 언제부턴가 아빠를 아버지로 부르고 엄마를 어머니라 부릅니다. 아마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엄마, 아빠에게 손님이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습니다. 단숨에 내리읽지 못하고 종종 책을 덮고 집에 전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5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이어지는 침묵을 깨고 '엄마'는 반가운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전화 줘서 고맙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먹먹함으로 남고 다시 피기 시작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가족은 황망함에 엄마를 찾습니다. 그래서 소설은 엄마가 큰딸에게 이야기하듯 시작합니다. 너는 그랬제...너는 이랬제... 그 '너'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글인 1장부터 먹먹하기 그지없습니다.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해설에서 "'너'의 가슴 치는 후회와 자책은 곧장 소설을 읽는 '나'의 그것이 된다. 그 누구도 숨을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숨을 곳 없어 이렇게 자책하고 있네요.
문득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를 옆에 두고 여자처럼 시시콜콜 그날 있었던 일들로 대화가 끊이질 않던 친구였죠.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그 친구가 사실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다지 남자답지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때는 말입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 아니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아내한테 미역국 한번 끓여줘본 적 없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모든 것은 어찌 그리 당연하게 받기만 했을까. 언젠가 읍내에 나갔다 온 아내가 거, 시장통의 당신 잘 가는 정육점 있잖우. 오늘 고 앞을 지나 가는 데 그 집 아낙이 자꾸 나를 불러서 들어갔더마는 미역국을 먹고 가라길래 웬 미역구이냐 했더니 오늘이 생일인디 남편이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줬다 합디다, 했다. 당신이 그저 듣고 있으니 맛이 있었던 건 아니요! 그란디 첨으로 졍육점 아낙이 부럽던디요, 그랬다. 당산의 메마른 눈이 껌벅거렸다. 어디에 있소...... 아내가 이 집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미역국이 아니라 전도 부쳐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벌주는가...... 당신의 메마른 눈에 물기가 어렸다. (156쪽)"
당신,, 남편의 고해 속 당신의 메마른 눈에 어린 물기는 곧 콧잔등을 시큰하게 하고 제 눈앞의 글씨를 어지럽힙니다. 엄마, 아빠, 아내가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9개월이 흐른 뒤 소설속 큰 딸은 엄마가 얘기했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안 피에타상 앞에 장미 묵주를 놓고 우뚝 선채로 눈물 한 방울을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엄마의 존재를...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우리 모두의 고해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