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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위화 《인생》-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진다는 것!!

글: HooneyPaPa 201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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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푸른숲

 

 

 

 

 

한동안 자신의 팔목에 '삶'이라는 문신을 새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남들과는 다른 가정에서 앞날에 대한 막막함, 대답없는 메아리에 대한 고통의 치기 어린 발로가 그의 팔에 아로새겨진 '삶'이라는 어설픈 문신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자아(自我)를 의식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자신의 인생을 비교하며 들여다보게 되는데 혹자는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숨과 함께 '고통'이라합니다.


위화의 《인생》은 격변기 중국 근현대 지독한 역사의 돌풍 속을 살아온 노인 '푸구이'가 들려주는 짧지 않은 삶의 서사시입니다. 반복되는 푸구이의 고통편력에 중반 이후는 책장을 넘기기가 녹록지 않을 정도로 고통의 서사시이기도 합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인생을 듣고 있으면  '이그 이 바보' 하며 순간 화가 치밀어 잠시 책을 덮고 창 밖의 하늘 한 번 쳐다보면서 숨을 돌리니 인생 그저 '허허'롭다 싶습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바로 이러한 심정으로 나는 미국의 민요〈톰 아저씨〉를 들었다. 노래 속 늙은 흑인 노예는 평생 고통스런 삶을 살았고, 그의 가족은 모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원망의 말 한마디 없이 언제나처럼 우호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했다. 이 노래는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설을 쓰기로 했고, 그것이 바로 이 책 《인생》이다."


저자 위화는 푸구이의 《인생》 앞에 위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푸구이는 사랑하는 가족 모두 세상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늙은 소와 함께 밭을 갈며 그의 삶을 물어오는 친구에게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하며 담담하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푸구이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살아졌습니다. 위화가 앞서 언급한 톰 아저씨처럼 말입니다. 적어도 톰 아저씨와 푸구이의 인생에서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지는 것" 은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 문법에는 '살다'가 수동화할 수 없어서 실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푸구이의 인생에선 예외가 될 듯합니다.



새로 부임한 현장의 아내를 살리기 위해 동원된 학교의 아이 중 푸구이의 아들 유칭만이 유일하게 혈액형이 맞아 수혈하게 되고 현장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아이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칭의 피를 모두 뽑아 죽게 합니다. 아들을 죽게 한 현장에게 분노했지만 그가 전장을 함께 누볐던 전우임을 알게 된 푸구이는 아들의 죽음에 책임은 온데간데 없는 대목은 어떻게 저럴수 있을까하며 울화가 치밀 정도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푸구이를 통해서 수동적인 삶에 익숙해진 중국의 민족성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인생'이라는 화두 이외에 저자는 서민 푸구이를 문화대혁명 전후의 특히 이후 10년(십년동란, 十年動亂 )에 굶어 죽어간 인구가 수천 만에 달했던 중국 근대사 한복판에 세워 모진 칼바람을 오롯이 맞게 하면서 중국 근대의 역사적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역시 푸구이는 앞의 돌풍을 피하기보다는 그저 수긍하고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나아갈 뿐입니다. 위화는 어떤 저항의식도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푸구이와 같다고 일갈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고 지병으로 죽었던 천상병 시인은 잘 알려진 <귀천>에서 그의 생을 하늘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으로 소풍 왔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독히도 고달프고 감내하기 어려운 슬픈 삶을 살아온 푸구이도 노년에 그렇게 담담하게 술회할 수 있는 것이 위화가 말하고 싶은 '삶'이라면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지는 것 사이에 또아리 튼 고통은 그들에게는 그저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 숨의 무게밖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난 이 세상 소풍와 잘 놀고 있는 걸까요?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저 살아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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