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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카르페디엠을 넘어 메토이소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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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열린책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역자 후기에서)"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습니다. 사실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 책은 굉장히 유명합니다. 한 때 조르바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조르바를 이야기합니다. 이런 책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제 독서편력에서 늘 발목을 잡습니다. 뿌리치기 위해 읽어야지요.


역자의 후기에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등이 저자인 카잔차키스의 영혼에 입김을 불어넣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 중 조르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부끄럽지만 마지막 역자의 후기까지도 지루하기 짝이없어 책장 넘기는 것 자체가 필자에겐 고역이었습니다. 조르바라는 실존인물은 현재를 즐기는 사람이었고 맹목적으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괴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조르바의 죽음을 예감한 두목(카잔차키스, 이하 두목은 카잔차키스로 쓰겠습니다.)은 소설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끌리어 테라스의 뜨겁게 달아오른 판석 위에다 종이를 펼쳐 놓고 조르바의 말과 행적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과거를 현재로 재현시키고 조르바를 기억해 내어 실체 그대로 소생시키면서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그가 사라지면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가능한 한 이 옛 친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나갔다. 442쪽"

 

그렇게 탄생한 이 소설은 카잔차키스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원제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 (위키피디아 참조)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노벨상은 받지 못했는데 그리스인이라는 이유가 컸나 봅니다. 이를 두고 영국의 문예 비평가 콜린 윌슨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이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였고, 러시아러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말이죠. 


어디까지가 과장이고 허구인지는 가늠하기 힘드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아 카잔차키스는 실존 인물인 조르바를 굳이 과장할 필요는 없었겠다고 느낍니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는 조르바가 이 정도로 괴짜가 아니었다면 이 책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사전 밑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는 곧 지리함으로 바뀌었고 책장은 더디 넘어갔습니다. 애초에 잘 못 짚었던 것이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만고불편의 진리입니다. 여담이지만 본다와 보인다의 차이는 아득함을 알기에 가급적 책을 집어 들 때 작가의 역사에 관해서 공부하고 될 수 있으면 책에 수록된 머리말과 후기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야겠다고 이 책 《그리스인 조르바》을 통해서 느끼게 됩니다.


각설, 책을 다 읽고 요 며칠 조르바에 대해서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신이 만든 율법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현실에 충실했던 '카르페디엠'의 조르바를 말이죠. 그런 조르바에게 카잔차키스가 끌렸던 건 어쩌면 당연했을 것입니다. 조르바는 그가 생애에 걸쳐 갈망했던 자유인의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메토이소노, 거룩하게 되기, 聖化)이었기 때문입니다. 조르바가 내뱉는 말은 거짓 고행을 일삼은 성인들이나 여느 주교가 일삼는 일들을 알고 환멸을 느끼던 카잔차스키에게 깨달음으로 거룩한 빛으로 다가왔겠지요.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322쪽"

    "「......그래요, 당신은 이해합니다.」그는 갑자기 화가 난 사람처럼 부르짖었다. 「..이해하고말고. 그래서 당신에겐 평화가 없는 거요. 이해하지 못하면 행복할 텐데. 뭐가 부족해요? 젊겠다, 돈이 있겠다,  건강하겠다, 사람 좋겠다, 만고에 부족한 게 없어요. 하나도 없지. 한 가지만 제외하고! 바보짓말예요. 그게 없으면 두목, 글쎄요......」430쪽"

 

확실한 건 브레이크가 망가지고 화끈하게 가자고 일갈하던 조르바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진 카잔차키스 또한 그렇게 자유롭게 살다 갔다는 겁니다. 생전에 써둔 그의 묘비명 처럼 말이죠.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는 진리는 단순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뻔한 얘기겠지만 먼 곳이 아닌 자신에게 진리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있을 것입니다. 얽매이지 않고 가슴이 시키는 일을 뜨겁게 하는 것. 그런데 부끄럽게도 제 가슴 속 심장은 가속도를 내질 못하네요. 중간에 언급했듯이 준비 없이 펼쳐 든 책이라 페달이 보이지 않았거나 떨쳐내지 못한 의구심에 브레이크를 망가뜨리지 못했거나 그도 아니면 내공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여하튼 외쳐봅니다.
카르페디엠을 넘어 메토이소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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