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을유문화사
극우 성향의 정치 인사들의 망말에 적대적 반감을 갖다가도 주말이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며 그들의 상상력 속에서 허우적댑니다. 꽤 오랫동안 즐겨 봤으니 일본에 대한 인상은 애니메이션 속의 세계관을 통해서 들여다봤다고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며 지독하리만큼 개인적인 일본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만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 특히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이나 직접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결벽증 같은 느낌, 특히 걸그룹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일본의 중년들을 볼때면 이해할 수 없음에 늘 갸우뚱합니다.
역사 시작 이래 우리나라 옆에 딱 붙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나라 일본,, 도대체 그들의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접하면 안다고 치부해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 동화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쉬울 겁니다. 우리 주변엔 《돈키호테》를 직접 읽어보신 분이 그리 많지 않지만, 절대 모른 체하지 않습니다. 몇 해전 《돈키호테》를 읽었던 마음으로 일본 연구의 고전으로 유명한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을 펼쳐 듭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읽자고 덤비니 한 장 넘기기가 녹록지 않습니다. 바쁜 업무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지쳐 고작 폋 페이지 읽다 잠들기를 몇 주, 그렇게 틈틈이 짬내어 읽은 '쪽독서'를 이어서 힘들게 마지막 책장을 넘겼습니다. 게다가 장시간에 걸친 독서라 첫 페이지부터 찬찬히 들추어 되새김하는 시간을 애써 가져야 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Ruth Fulton Benedict (June 5, 1887 – September 17, 1948)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의 삶이 좀 특이해 짚어봅니다.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의 삷은 그리 평탄치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대학 졸업 후 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습니다. 그녀가 두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었고 그 충격에 지독한 히스테리를 부리는 어머니 밑에서 늘 정신병에 가까운 성격장애를 앓게 됩니다. 설상가상 열병으로 한쪽 귀의 청력마저 잃어버립니다. 이후 1914년 코넬 의과대학의 생화학자인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절망감은 인류학이라는 학문으로 표출되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컬럼비아대학 인류학과 정교수가 됩니다. 또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고 그러한 에너지를 저술활동에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이 일본에 대공세를 펼쳐 마침내 미국의 거대한 힘을 보여주기 시작한 1944년 6월, 전쟁 공보청으로부터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아 나온 결과물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전쟁의 결말을 염두해두고 정당화를 위한 밑작업으로 보입니다. 치밀하고 대단한 빅브라더의 나라가 미국이지요. 각설합니다.
"인류학자는 경험상 아무리 기괴한 행동이라도 결국은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
"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는 다르다. 우리는 안구를 의식하면서 사물을 보지 않는다"
루스가 제1장 <연구과제-일본>에서 언급한 말입니다. 어떻게 한 나라를 연구하면서 실제 가보지도 않고 연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조용히 잠재웁니다. 숲을 보려면 숲에서 나와야 한다는 이치입니다. 그러고보면 인류학자라는 직업이 어쩌면 사회적 아웃사이더에게 더 잘 어울리는 직업이 않을까 조심히 생각해봅니다. 루스가 청각장애, 조울증 그리고 여성 동성애자였음 상기하면 말입니다.
이 논문이 쓰인 시기가 말해주듯이 일본 연구는 '전쟁'을 시작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 결과 가미카제식 충격적인 전투로 각인된 일본을 전쟁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을 루스가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이란 주제에서 일본인들에게 천왕의 위치에 대해서 재조명하면서 당시 일본의 정치 평론가들은 "천황이 신하에 대해 갖는 불후의 지배력"을 힘주어 주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근거의 빈약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천황이야말로 일본의 근대 국가적인 신토神道의 심장이므로, 천황의 신성성의 근본을 파헤쳐 여기에 도전한다면 적국 일본의 모든 기구는 붕괴할 것"이라는 일부 미국인 학자의 의견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후 탐구되는 모든 주제가 루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이다. 이 사실을 점령 지역의 주민에게 철저히 인지시켜야 한다. 주민을 지나치게 배려하면, 그들이 일본의 친절에 편승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저자는 일본을 주축으로 아시아를 단결시킨다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설명한 한 육군성 대변자의 말을 상기시켜며 이른바 '형'이라는 지위를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계층 그리고 나라에 이르기까지 '각자 알맞은 위치'로 확대 적용합니다. 그 시작으로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많은 지면 - 3장과 4장 - 을 할애해서 메이지 시대와 그 이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시대의 각 계층대해서 조명합니다.
도쿠가와 시대를 살펴보면, 실권을 박탈한당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나라를 통치했던 쇼군(도쿠가와 가문)이 각 번의 수장인 다이묘를 관리하고 그 아래로 크게 네 계급의 카스트가 있었는데 무사계급인 사무라이와 농민, 공인, 상인이 그것입니다. 상인 아래로는 인간 축에도 들지 못하는 불촉천민不觸賤民(untouchables)이 있었는데 이들이 사는 부락은 마을로 계산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토지는 양반이 소유하고 농민은 소작했지만, 일본의 농민은 거래가 불가한 농지를 직접 소유하고 세습하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물론 수확량의 일정 비율을 다이묘에게 바친 점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루스는 이것을 "농민은 쇼군의 정치기구, 다이묘의 여러 기관, 사무라이의 봉록 등을 포함해 200만 명을 웃도는 기생적 상류 계급 전체를 어깨에 짊어진 아틀라스였다"고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도쿠가와 250년 동안 1,000여 건의 농민 폭동이 일어났는데 흥미로운 것은 폭동이 다이묘의 폭정에 대한 항의였고 대부분 법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폭동의 지도자는 엄격한 계층제도의 법을 어겨 사형을 당했지만 그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들이 살고 있는 계층사회의 본질적 요소로서 인정- 이라고 체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계급이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상인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면 봉건제도가 쇠퇴한다."는 이유로 아래 상인계급의 철저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상인들은 사무라이 계급을 이용하여 결혼이나 데릴사위를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루곤 하지만 혁명과 같은 계층사회의 본질적 요소를 흔드는 경우는 없습니다. "개인은 각각 정해진 사회적 지위 속에서 생활하도록 제약되었다. 그런 세계 속에서 법과 질서가 무력으로 유지된 200년간, 일본인은 이 면밀히 기획된 계층제도가 안전을 보증하는 개념이라고 훈련받았다. 그들은 이미 아는 영역에 머무는 한, 이미 아는 의무를 이행하는 한, 그들의 세계를 신뢰할 수가 있었다." 라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개혁과 '봉건주의 붕괴'를 싫어했던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나 유럽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손노이조尊王攘夷, 즉 ‘왕정을 복고하고 오랑캐를 추방하라’는 기치 아래 1868년 반反도쿠가와 세력이 승리를 거두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도쿠가와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이른바메이지유신의 시대로 넘어옵니다.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계급의 '특수한 연합'세력으로 구성된 '정부'는 대중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조선침략론을 묵살하고 보수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철저하고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하게 되고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의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이 아닌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세계열강의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고, 결국 약소국이었던 일본의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됩니다.
저자는 표면적으로는 이전 도쿠가와 시대의 많은 부분에 개혁을 단행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계층적 관습의 발판을 없애지 않고, 단지 거기에 새로운 위치를 부여했"다고 지적합니다. "정치, 종교, 경제 등 모든 활동 분야에서, 메이지 정치가들은 국가와 국민 간의 '알맞은 위치'의 의무를 세밀히 규정합니다. 즉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임을 재차 강조하고 이것은 이후 본격적인 일본인의 독특한 성향을 규정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일본인들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것에 대해서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에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몇 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인연이 먼 사람들에게서 뜻밖의 은혜를 입는 것에 대해 일본인들은 가장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이 제멋대로 참견하면, 그 사람에게 온(恩, 은혜)를 입히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입니다.
온恩의 반대의무인 기무義務와 기리義理 - 각각 은혜와 의리, 의무가 아닌 일본어 그대로 번역한 이유를 잘 알지 못하겠다 - 또한 일본인의 중요하게 하는 항목으로 기무義務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또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없는 의무(obligation)이고, 기리義理는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 갚으면 되고, 또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부채라고 루스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리는 조금 특수한 데 시간적으로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안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갚고 그것이 불가항력일 경우엔 죽음으로 갚기도 합니다.
일본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성(性)입니다. 세계적으로 자위기구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일본임을 말해주듯이 그들은 "자기 욕망의 충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안"고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여 추구되고 삶의 지혜라고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욕溫浴에서부터 잠과 성(性)에 이르기까지 육체적 쾌락을 '인정'의 범주에 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쾌락은 인생의 중대 사항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는 선으로 못 박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매우 민감한 일본인은 서양 제국과의 접촉이 막 시작된 시기에 외국인의 비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러 가지 법률을 제정했지만 아무리 법률로 단속해도 문화적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독특한 특성이 군국주의 깃발을 세우고 이웃 나라를 범할때 위안부라는 비인도적인 전범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상하게 정리합니다.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개의 힘이 각자의 생활에서 패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다.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저자의 지적처럼 일본인은 철저히 기회주의적입니다. 패전 후 미국인들에게 보여줬던 태도가 그렇고 시간이 흐르자 숙였던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과거 망령을 불러들이고 있는 지금의 일본이 그렇습니다. 현재 극우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아시아 정세는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이중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의 태도에 대해서 루스의 시각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을 한 번도 가보지 않고 또 아무리 많은 관련 고서를 읽고 객관적으로 쓴다 해도 지금의 일본을 제대로 설명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을 미화하는 듯한 글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일본 공부의 시작으로 탁월한 선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