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권력의 종말
니코 멜레 지음, 이은경 외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산업혁명 이후로 자본이 한곳에 모이고 모인 자본은 더 많은 자본을 흡수해 점점 거대해져만 갔습니다. 소규모 생산에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모인 대규모 자본은 이제 표면적으로 한계를 보입니다. 소로스 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은 <인사이드 잡>에서 이런 현상을 유조선의 칸막이에 비유합니다. 유조선의 칸막이는 거대한 탱크를 잘게 나눠 파도의 출렁임에 배가 전복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넘치게 비대해진 유조선은 작은 풍랑에도 전복되기 쉽습니다. 이를 미네르바는 밥상을 받치는 다리로 비유했습니다.
니코 멜레NICCO MELE의 《거대 권력의 종말》을 읽었습니다. 그는 지금 한창 잘나가는 미국 최고의 지식인이자 통섭형 IT 미래학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하위드 딘 선거캠프의 웹사이트 당당자로 일하며 700만 달러가 넘는 기금을 모으는 업적을 이룬 일과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력이 눈길을 붙잡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IT관점에서 세상을 통찰하고 예측한 글입니다. 즉 거대해진 모든 것들을 언론, 정부, 국방, 기업(시장), 엔터테인먼트 등의 큰 카테고리로 나누고 그 안에서 군림해오는 'BIG'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IT를 전공했기에 비교적 쉽게 초반부의 글을 따라잡습니다. 지금까지 '최초'라는 키워드로 배운 IT의 딱딱한 역사를 이해관계를 따져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똑한 사람들은 거대 기관에서 일하고 자신의 일정 파이를 보장받습니다. 6~70년대 컴퓨터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며 거대한 기관에만 있을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컴퓨터 마니아들 역시 당연히 기관에서 일하며 대부분 인공지능 같은 폼나는 일을 했고 모든 명성과 보상을 그쪽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소형컴퓨터 연구는 비서 업무나 행정사무에 비교되며 하찮은 일로 여겨집니다. 지금의 최첨단 스마트폰은 그런 명성과 보상을 버린 괴짜 천재들의 덕인 셈입니다.
'개인용 컴퓨터는 거대 기관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때 "컴퓨터 해방"을 외치며 보편화를 시작한 최고의 선봉장은 최근에도 자주 회자되는 잡스옹의 <1984>라는 매킨토시 광고였습니다. 거대 기관에 컴퓨터를 납품했던 IBM을 디스토피아를 그린 조지오웰의 소설 속 가상인물 '빅 브라더'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실제 IBM은 자본을 앞세워 비 인도적인 짓도 많이 했답니다. 가장 유며한 사례로 2차 대전때 집시들의 생체실험을 위한 기자제 지원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IBM을 마뜩잖게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치를 띄는 모든 것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나는 지금 이만큼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만족스러운데 왜 자꾸 흔들려고 해! 그것이 보수이며 보수는 모든 가치가 머문 곳에서는 어김없이 증식합니다. 니코 멜레는 닐 포스트먼(Neal Postman)의 『테크노폴리Technoploy』를 예를 들어 설명하며 "테크노폴리는 기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사람이 있으며, 이들은 자신이 지닌 정치적 이상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기술 설계에 반영한다."라고 덧붙입니다.
한문이 우리나라 양반님네들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벽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듯이 "기술 마니아들은 응용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 기관이 약화되고 있는 시대에 '더욱 거대한 기관으로서 새로운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의 기술 전문성을 원하는 시장의 니즈를 만들어 냈"습니다. " 저자는 "이러한 복잡성을 '기술 전문가의 병폐 nerd disease'라고" 부르고, 그역시 그 혜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언론, 정부, 기업 등등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남이 없습니다. 참 쉽죠. 어쩌면 모든 게 이리도 딱 들어맞는지... 저자는 초반부 IT의 이데올로기적 역사에 적잖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후 설명하는 모든 주제의 '종말'을 이해하는 데 밑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중심에는 "그들이 보는 권력의 풍경" 밖에 있었던 "인터넷"이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니코 멜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995년 무렵 국립과학재단이 인터넷의 필수 기반 시설을 상무부에 넘기면서 인터넷 상거래를 가로막는 마지막 장애물이 사라졌다. 여기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자 대부분의 워싱턴 D.C.의 입법자와 규제자들이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들은 인터넷의 힘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인터넷은 그들이 보는 권력의 풍경 속에 들어 있지 않았고, 인터넷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친숙하고 비슷한 대상도 없었다. 38쪽"
거대언론의 종말, 진지한 저널리즘의 회복이 문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거대 언론 편을 들여다봅니다. 니코멜레는 "지난 20년간 언론 조직들은 중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 언론을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만드는 데 몰두하며 점점 권력에 부합하는 행태를 보여왔다."라고 말하며 기득권층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무책임한 거대 언론을 비판합니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인프라의 성숙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듣고 또 직접 말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실제로 블로그와 각종 SNS를 통해서 어떤 사실에 대해서 메이저 언론보다 먼저 알게 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누구나 기자인 셈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정 소식을 듣기 위해 신문 전체를 구입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일종의 교차 보조금이 사라졌습니다. 이젠 "스포츠 경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신문을 구매한 소비자는 시청 출입기자의 월급을 보조하는" 일도 없어진 셈입니다.
얼마 전 조선·중앙에 이어 동아일보마저 연합뉴스와의 계약을 중단한 일이 있었습니다. 네이버가 뉴스스탠드를 개편하면서 포털을 통한 유입이 줄어든 데다 뉴스를 공급하는 연합뉴스가 네이버에 직접 뉴스를 제공했다는 이유는 표면적일 것이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점점 줄어드는 자신들의 파이 때문일 겁니다. 포털에 의존하던 기존 거대 언론의 안일함의 결과일 테구요.
어찌 되었건 지금의 거대 언론은 그동안의 안일함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을 가지지 못한다면 니코 멜레가 주장하는 것처럼 붕괴에 이르는 수순만이 남을 것입니다.
더불어 니코 멜레는 질적인 하락과 진지한 저널리즘의 실종을 우려하고 있는데 풀뿌리 기자들이 탐사보도와 같은 조직력과 자금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조세 피난처' 보도를 한 한국형 프로퍼블리카를 표방한 "뉴스타파"와 같은 한국형 탐사 전문 매체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니코멜레의 우려는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기우杞憂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거대 정부의 종말, 결국엔 돈.돈.돈 - 십알단과 국정원 조사
"이 시대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이데올로기는 진보주의도 보수주의도 아니다. 권력층에 대한 반사적인 불신과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끊임없는 외침, 즉 반기득권주의다. 126쪽"
- 2010년 <뉴욕타임스>, 맷 바이 기자
부와 권력으로 이루어진 정치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고 민주주의는 그만큼 더 빈곤해졌습니다. 철옹성 같은 정치는 "지난 10년간 인터넷은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나타나 기득권층이 세운 재정적 진입 장벽을 허물고" 있는데 이는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기존 정치체제는 밀실 정치를 개혁한 새로운 규칙과 전 가정에 텔레비전이 보급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했고, 그 결과 기득권층에 속해 있지 않던 후보들의 입지가 강화"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텔레비전의 위력을 알게 된 기득권층은 또다시 막대한 돈을 들여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에 집중, 결국 그들의 요새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스로만 IT강국으로 자부하는 한국의 경우 기득권 세력이 SNS의 위력을 알게 되자 국정원을 필두로 '십알단'을 조직 대대적인 선거운동을 벌이다 발각되어 현재 국정조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빈곤함을 나타내며 한국 정치의 부와 권력의 현주소입니다.
저자는 점점 개인화되고 시민 참여가 줄어드는 현상이 기득권 세력을 돕는다고 판단, 미트업닷컴을 소개하며 시민들의 사회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지도자"의 필요성과 그러한 지도자의 배출에 필요한 "보편적인 미국적 가치와 급진적 연결의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거대 정당"편을 마무리합니다.
필터 버블과 디지털 봉건주의!!
가족의 리얼리티쇼를 꾸준히 올려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셰이칼의 예로 시작하는 4장 거대 엔터테인먼트편은 '오래된 거대 권력'은 누구나 쉽게 비디오를 찍어 온라인에 올리고 볼 수 있는 세상에서 도태하고 대신 유튜브나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디지털 거대 권력이 등장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거대 권력이 사려져가는 지금, 우리는 정보 공급처(주로 구글과 페이스북)가 생각하기에 개인들이 보고 싶어 할 것으로 보이는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안에 살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소위 'BIG'의 종말에서 예외인 셈입니다.
니코 멜레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로이터통신의 앤서니 드로사가 했던 '디지탈 봉건주의'를 인용합니다.
"아마추어 창작가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같은 사이트에 현혹되어 자신보다는 미디어 플랫폼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중세시대의 농노처럼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그 땅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텀블러등 다른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다.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지만(기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로부터 수익을 얻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160쪽"
하지만 저자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별에 묶여 있는 사람은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다소 모호하게 마무리합니다.
거대 정부, 거대 군사력, 그리고 지성 모드 지금까시 살펴본 바와 같은 맥을 유지하며 적절한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엔터테인먼트 편을 제외하면 '규모의 붕괴'를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권력은 규모에서 잉태되는 바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 《거대 권력의 종말》이 그럴싸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전반에 걸쳐 정치적인 맥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거대 권력의 종말'을 이웃과 지역 커뮤니티를 되살리는 기회로 삼고, 지금의 눈부신 기술을 하나로 모아 다 함께 새로운 쳬계를 수립해야 한고 혼란 속에서 흔들리지 말고 미래를 지배할 기회임을 역설하면서 다소 추상적인 결말로 책을 끝맺고 있습니다.
짧게 정리해보자면 모든 것은 순환의 일부입니다. 처음 작은 가치들이 모여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규모가 커집니다. 큰 규모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그 인프라를 이용한 소규모의 권력들이 규모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권력으로 등극하는 과정,,, 다시 말해 오래된 거대 권력은 새로운 권력을 잉태하고 대체될 뿐 니코 멜레가 주장한 '종말'에 이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고해집니다. 저자가 권력의 '종말'론을 펼치며 '정치'를 근간으로 두었는데 그 '정치'라는 것이 인류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절대 변할 수 없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신은 말합니다.
이전에 잘 살았던 사람들은 복고를 주장하고,
현재 잘사는 사람들은 현상 유지를 주장하며,
아직 잘 살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혁신을 주장한다.
대체로 이러하다. 대체로!
혁신을 주장하는 진보가 그 혁신을 이루고 또다시 현상 유지를 외칠테니 그 순환은 영원불멸, '종말'에 수렴할 일은 단언컨데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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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4주 <반디 & View 어워드>로 선정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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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알라딘 이달의 TTB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