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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김훈 장편소설《현의 노래》- 아수라를 달래는 우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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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칼의 노래》 이후 문체에 이끌려 두 번째로 읽는 김훈의 소설입니다. 그의 책 속 대화는 간결하고 에둘러 말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으며 주거니 받거니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의 풍경의 묘사는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우륵의 소리와 함께 사라져가는 가야(伽倻)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현의 노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을 앞둔 왕의 생리현상을 비롯한 굳이 몇 개쯤은 빠뜨려도 될법한 처참한 풍경까지 낱낱이 보여주는 세심함이 독자로 하여금 암울함을 넘어선 지옥 같은 시대적 배경의 어두운 아우라를 직접 목도하게 하고 그 때문에 불편해지는 마음은 《칼의 노래》보다 훨씬 큰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워드는 '아수라'와 '허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서기 5~6세기 고을마다 나라였고 그 고을의 왕이 죽으면 50여 명을 왕과 함께 묻었던 순장제도가 있었던 가야(伽倻)국, 우륵은 집사장의 명을 받아 소리를 베풀어 순장자들을 위로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생활처럼 흔합니다. 자연사도 많았지만, 수많은 작은 나라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위한 시간 속에 전쟁이 생활의 일부이기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날마다 섬 뒤쪽에서 해가 뜨고 저무는 해가 다시 섬 뒤쪽으로 돌아와 섬은 늘 밝아서 대낮이었고 사람들은 고기 잡고 밭 갈아 살았으되 나라가 없어 왕도 없고 봉분도 없다고 했다." (278쪽)던 우륵의 제자인 니문의 생각처럼 나라와 왕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가야에는 우륵과 같은 나이의 세상을 보는 눈을 타고났던 대장장이 야로가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병장기는 가야와 신라 그리고 백제 병사들의 손에도 쥐어집니다. 병장기는 주인이 따로 없어서 쥐는 자마다 주인이라고 했던 야로는 결국 출발은 달랐지만, 월광과 함께 기회주의자를 용납하지 않는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소설 속 이사부는 전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우선이고 인도(人道)는 차선입니다. 일만 오천의 백제와 가야의 투항한 자들을 먹이지 못하고 부리지 못하고 가두어 놓고 지키지 못하며 돌려보내면 다시 올 것을 알기에 망설임없이 모두 죽여 구덩이에 묻도록 지시했던 이사부는 끝내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하고  늙어 병으로 죽는 것 또한 허허롭습니다.


이사부는 나라를 버리고 신라에 투항한 우륵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가 야로의 병장기처럼 우륵의 소리는 주인이 따로 없지만, 그의 금을 손수 튕겨 소리를 보기도 하고 또 '주인 있는 나라에서 주인 없는 소리를 펴게 해달라'는 그의 말 - 소리로 산맥을 건너가려는 것인가. 313쪽-에 이사부는 '막연한 동질감'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소설에 제법 많은 부분을 할애한 인물이 있습니다. 왕을 모시던 오줌싸개 시녀 아라가 그 주인공입니다. 다소 억지스러울만큼 그녀는 늘 '오줌'과 함께 등장합니다. 선왕의 죽음으로 함께 무덤에 들어갈 운명이었지만, 오줌을 핑계로 궁을 빠져나왔고 나루터 대장간 뒤 숲 속에서 오줌을 누다가 군사들에게 붙잡혀 객주에서 야로의 시중까지 들게 됩니다. 세상 눈치 백 단인 야로는 그녀가 시녀임을 바로 알아보지만, 오히려 그녀와 몸을 섞고 신라로 도주하도록 베풉니다. 결국 우륵과 만나게 되고 우륵은 제자 니문과 엮어주었지만, 결국엔 집정관에게 발각되어 태자의 죽음과 함께 순장되었습니다. 아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오줌을 누는 여인으로 집요하게 그려집니다. (274쪽 참고) 아라의 존재가 기록인지 작가 김훈의 상상인지 알지 못하지만 오줌에 대한 집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허허롭긴 합니다.


또한, 색(色) 하게 그려진 비화라는 인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륵의 아내로서 우륵과 몸을 섞는 일 말고는 존재감이 없었던 그녀는 아라의 등장으로 묘한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왜 아라의 가슴에 포개야 그 허전함이 채워지는 것인지, 비화는 늘 알 수 없었다." (282쪽) 는 그 주체못할 색(色)을 김훈은 동성애(?)로 발전시켜버립니다. 그녀는 아라가 죽자 마당에서 가랑이 사이로 바람을 받다가 뱀에 물려 죽고, 우륵은 담담하게 자연사로 받아들입니다.


우륵은 "악기란 아수라의 것이다. 금을 신라로 보내라. 거기가 아마도 금의 자리이다." (350쪽)라고 말하며 무너진 가야 열 한 고을의 소리와 열 두 줄의 금을 신라에 맡기고 숨을 거둡니다. 금과 소리가 가야보다 더 아수라인 신라로 가기를 원했던 우륵 자신처럼, 아무리 삶이 지옥 같다 할지라도 그 삶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주인 없는 소리의 필요성을 작가 김훈이 우륵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고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현실로 돌아옵니다. 덧없는 떨림에 마음을 의탁하여 사람의 떨림과 소리의 떨림이 서로 스며서 함께 떨리기 때문에 새 울음소리는 곱게 들리고 말 울음소리는 추하게 들린다고 하던 우륵의 생각처럼, 살아서 들리는 동안의 그 소리에 오늘도 마음을 의탁하며 때로는 추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느끼며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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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훑고 지나간 책이 벌써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쩍쩍 갈라지는 이런 제본 너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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