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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대(大)학자의 뛰어난 풍모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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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창비(창작과비평사)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집안의 자랑이라며 귀가 닳도록 말씀하셨던 분이 다산 선생님입니다. 사족일 수 있겠는데 할아버지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일본 유학 - 대학에 다녔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 까지 다녀오신 후 지리산 산골에 손수 집을 짓고 한평생을 책에 빠져 보내셨습니다. 텃밭 수준의 농사를 제외한 생계를 위한 노력을 오롯이 책을 읽고 쓰고 공부하는데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당연히 당신의 2세에 대한 뒷바라지는 전무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한(恨)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직접 쓰셨던 책들을 포함한 책과 유품을 대부분 태워 버렸는데 거기에는 그러한 한풀이의 이유였으리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당시 어린 내가 느꼈던 유품의 말소에 대한 안타까움은 현재까지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각설하고, 그렇게 익히 들어 친근했던 다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이 주변 사람과 비교해 더 나은 점이 없다는 사실은 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불편하면 편하게 해야겠지요. 결국, 자발적인 불편해소의 목적으로  이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처음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한때 천주교에 관심을 뒀다가 이념의 차이로 멀리했지만, 곧 정치적인 공격인 신유교옥(辛酉敎獄, 1801)에 연루되어 40세부터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18년의 유배생활 동안 아들과 형님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낸 서한을 엮은 책으로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엮임하고 있는 박석무 교수가 가필과 증보(개정 2판)를 거듭한 인고의 노력이 녹아든 책입니다. 


적지 않은 쪽수에도 불구하고 서한의 특징상 읽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만, 저같이 경서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한 사람은 행간의 숨은 뜻을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았으며 - 특히 형님에게 보낸 편지나 소개된 인물이나 책에서 - 일독(一讀)에 만족할 수 없고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자주 들춰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다산은 자식과 가문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머릿속에만 두고 숨기지 않았으며 학문에 대한 그 깊이를 어렴풋이 느낌과 동시에 "아 이런 분이셨구나~"라는 소기의 다가섬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독서의 중요성은 그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두 아들에게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인 독서를 강요했고, 바라는 것만큼 노력하지 않는 아들들을 나무라며 "너희는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드느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며 자식들의 지도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또한 "폐족 가운데서 왕왕 기재(奇才)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118쪽)이라며 과거에 응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서 폐족을 비관하여 스스로 꺾이지 말고 경전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달라고 당부하기도 합니다.


아들에게 시험 삼아 술 한잔을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음을 보고 걱정되어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라며 "입에서 딱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해라" (100~101쪽) 이를 정도로 작은 것의 법도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적잖게 술을 즐기는 나로서는 조금 부끄러워지는 대목입니다.


반면, 힘을 얻은 문구도 있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는 교훈은 참으로 큰 용기가 없으면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40, 50 이 된 사람은 도리어 할 수 있다. 혹 고요한 밤에 잠은 오지 않고 초연히 도를 향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 이 기회에 더 확충하여 용감히 나아가고 곧게 전진할 것이지, 노쇠하다고 주저앉는 것은 옳지 않다."(306쪽)의 글은 어릴 적 생각했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며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놓지 못한 삶, 뒤늦게 무언가를 찾기 위해 붙잡은 책들,, 불혹을 한 해 앞둔 나이에 주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글귀는 잠을 깨우는 죽비와 같았습니다.


또한, 다산은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서 일 년의 양식을 계산해 보면, 참으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굷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 같아도 그믐날 저녁에 이르러 보면 한 사람도 줄어든 이가 없다는 얘기로 가난을 불평하는 제자를 격려하는 자상함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315쪽)


책을 덮고서 머리 위를 떠도는 큰 뜻은 단연코 학문 그리고 '독서'였습니다. 아직 감히 학문의 깊이를 평가할 길 없어 논외로 하더라도 독서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산 선생님께 좀 더 다가서는 유익한 시간이었음을 스스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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