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림이다
손철주.이주은 지음/이봄
언젠가 사진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허영심에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를 끙끙대며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법 어려운 책이었고 전공서적 공부하는 기분으로 오랜 시간에 걸려 독파를 했더랍니다. 그때 사진과 회화의 어정쩡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회화, 즉 '그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1839년 사진이라는 기술이 처음 발표되면서 회화와의 어정쩡한 싸움은 시작된 거죠. 그 당시 웨스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진은 여러 면에서 회화를 부정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화가들은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사진에 관하여》209쪽. 에반스가 화가들의 지나친 자기방어의 완화를 위해 한 이 말은 결국, 정확한 재현이라는 지루하고도 따분한 고역은 사진이 맡고, 회화는 좀 더 수준 높은 과업인 추상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대목에서 나는 그렇다면 이제 사진도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회화처럼 좀 더 수준 높은 과업이 되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사진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그림에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손철주, 이은주의 《다, 그림이다》를 읽었습니다. 사실 두 명이 대화하듯 읊조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더 나아가 요즘 젊은이들의 댄스 배틀처럼 동·서양의 '그림 배틀'이라는 느낌도 함께 합니다. 화두를 두고 각각 그림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배틀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텍스트가 사뭇 서정적이며 기분 좋은 읊조림입니다.
이번에는 '3M 포스트잍 플래그'를 활용해 보았습니다. 기존엔 과감히 접거나 연필로 밑줄을 쳤고, 더 심할 때는 형광펜으로 덧질하곤 했었습니다. 그저 새로운 시도입니다. 인상 깊은 글귀나 페이지에 하나씩 붙였더니 저렇게 많아졌습니다. 역시 되새김에 대한 의지이자 약속입니다.
이 책은 '그림은 나와는 관계없는 텍스트입니다'라며 그림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그래서 인상파 초현실파 라파엘 전파같은 딱딱한 미술 전문 단어는 이 책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단지 한 분이 하나의 화두를 던집니다. 그 화두는 우리의 삶과 밀접합니다. 그리움이 될 수도 있고 유혹이 될 수도 있으며 성공이나 좌절도 될 수 있습니다. 즉 앙앙불락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 '삶' 그 자체가 화두입니다. 그 화두가 연상되는 그림을 한 분은 동양화를 또 한 분은 서양화를 들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의 큰 테두리는 편지의 형식입니다. 그림에는 초절정 고수이신 두 분이 전문용어는 자제해 주시고 지극히 서정적인 문체로 마치 그림으로 연애를 하듯 풀어나갑니다. 그 이야기를 읽는 재미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림 앞에 쌓았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짐을 느낍니다.
65점의 인상 깊은 동·서양의 작품을 포식하듯 맛있게 먹은 기분입니다. 그런데....삶의 화두는 많습니다. 그래서 감질납니다!! 《다, 그림이다 2》 살포시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