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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김훈 장편소설 《흑산黑山》- 새로운 세상은, 내일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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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김훈 지음/학고재

 

올 초에 한승원의 《다산》을 읽으면서 소설《흑산》이 다산의 형인 정약전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사두었습니다. 같은 사건으로 유배된 형과 아우의 심정을 짧은 기간에 함께 들여다볼 기회를 만들고자 함이었는데 다른 책에 밀려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에 이어 개인적으로 세 번째 읽는 김훈의 역사소설임이 말해주듯이 이젠 '김훈'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쳐 들 정도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시간의 흐름이 존재합니다. 정약전(丁若銓, 1758년~1816년)이 사학죄인으로 잡혔다가 배교(背敎)를 하고 풀려나 유배지 흑산도로 들어가기 전 무안 포구부터 진행되는 흐름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황사영(黃嗣永, 1775년 ~ 1801년)이 정약현의 사위로 들어오고 결국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었다가 잡혀 사형을 당하는 흐름이 그것입니다. 그 두 개의 흐름은 평행으로 부딪힘이 없이 진행됩니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서 산다." 387쪽



위에 인용한 작가의 후기에서 알 수 있듯이 김훈의 작품을 읽다 보면 '생生'과 그 자체와 투쟁해야 했던 처절한 백성의 생활상을 간결한 글터치의 반복으로 묘사되는 세밀화처럼 바로 독자의 눈앞에서 펼쳐지도록 합니다. 그 아수라의 현실을 직접 목도했던 《현의 노래》에 대한 기억은 그 후로 1,400여 년이 지난 백성의 삶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것들은 대체 누구인가. 저것들은 왜 저러는가. 왜 죽여도 또 번지는가. 저것들은 어째서 삶을 하찮게 여기고 한사코 죽을 자리로 나아가는가……" (97쪽)라고 묻던 임금의 말에 대한 답을 《흑산》은 소설의 여기저기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짐승처럼 짝을 붙여 노비의 수를 생산한다는 이야기(142~143쪽에서)와 책의 곳곳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각종 세금과 공물의 노예로 백성은 죽지 못해 사는 세상이었음을 구례 어느 지방에서 장마와 세금으로 먹을 것을 잃고 떠돌다 무안 앞바다에서 죽은 어린 소녀에서 봅니다.


그러한 시공간만 아니면 충분했던 백성들과 노비들 그리고 일부 깨우친 자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시공간을 부정하는 천주교는 그들의 목숨과 같았습니다. 그들도 사람임을 양반네들과 다르지 않음을 몸으로 느겼고 죽여도 죽여도 번지는 그것을 나라는 무부무군(無父無君)한 패륜의 사학이라고 불렀고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사실 전 책을 읽으면서 천주교에 대한 박해보다는 서민들의 삶에 더 눈길을 두었기 때문에 자산어보를 만들고 서당을 짓는 걸로 다른 하나의 흐름이 끝나는 정약전의 흑산도 생활에 대한 비중보다는 황사영의 흐름에 더 비중을 두었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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