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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권 《배반의 여름》- 70년대 여성들의 이야기

글: HooneyPaPa 201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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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여름
박완서 지음/문학동네

 

 

지난달 중순쯤 단편소설 전집 1권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읽은 지 꼬박 한 달이 지나서야 두 번째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2권은 1권에 이어 1975년부터 78년까지 3년 동안 발표된 1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권의 연장으로 여성 심리의 묘사는 한층 더 예리해지고 공고해짐을 느낍니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기의 국민에게 널리 유포된 이데올로기는 ‘잘살기’ 이데올로기였다.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로 표징 되는 잘살기 이데올로기는 독재라는 채찍 속에 숨겨진 박정희 정권의 당근(423쪽)"이라고 했듯이 소설을 읽으면서 각각의 화자(話者)는 그러한 삭막한 시대를 함께 했던 저자의 페르소나임을 자연스럽게 느낍니다.



이 시기는 무조건 경제지표를 키우기 위해 과정은 무시된 시대였고, 누구든 잘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이른바 '천민자본주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류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상류층으로 가는 티켓을 살 수 있었고 그들의 자녀에게는 당당하게 금수저를 물려주었으며 덤으로 '교양'까지 덤으로 챙겼습니다.


특히 아내의 부동산 투기로 벼락부자가 된 대학 강사는 아내가 자신의 가족을 '상류층'으로 이끄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자신은 그저 아내에게 대학교수의 아내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고 물질만 좇는 '천박함'에 대해서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다가도 곧 아내에게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낙토(樂土)의 아이들」과, 후줄근한 모습에 못사는 것 같아 왠지 도와준다는 느낌으로 선뜻 부렸던 '흑과부'가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파트 입주금을 제일 먼저 지불함에 배신감을 느꼈던 화자(話者)는 훗날 자신의 집 욕실에서 목욕하던 흑과부의 매력적인 속살과 풍부한 가슴을 보고 늘 지저분한 모습 뒤에 감춰진 숨겨진 아름다움과 생경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곧 자신이 따뜻한 물이 나오는 작은 욕실이 있는 집에 안주한 소시민성을 깨닫게 되며 제2의 '흑과부'를 예고하는 「흑과부」편에서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의 눈길로 바라본 단편 이외에도 시대적으로 억눌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았던 '여성' 그 자체에 대한 고찰한 글이 적지 않으며, 70년대 소시민으로서 사회의 주류에서 비켜난 할머니 혹은 어머니의 생경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 시대를 살면서 소외된 여인들의 이야기를 한가득 만나 볼 수 있고 또 그 자체로 사유로 이어져 글을 읽는 맛이 절로 납니다. 고마움과 박완서의 문체에 길들여저감을 함께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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