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Sketch

[서평] 박완서 단편소설집 6권 《그 여자네 집》- 현실적인 삶에 대한 면죄부를 나누어 받다...

반응형

 

 

그 여자네 집
박완서 지음/문학동네

 

박완서 단편 소설 전집을 구매한 지가 벌써 일 년이 넘었습니다. 1권인《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올 초에 읽고 흔적을 남긴 후 꼬박 1년이 걸린 지금에야 마지막 6권을 읽었습니다. 사실 내년으로 넘기고 싶지 않은 약간의 고집과 의무감으로 읽었고 조금은 후련하기까지 하니 故 박완서 작가에게는 미안한 마음 또한 없지 않습니다.


6권인 《그 여자네 집》은 1995년 1월 부터 1998년 11월에 발표한 박완서의 마지막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나이와 함께 작중화자의 나이 또한 많아지고 다루는 내용도 노인의 삶에서 크게 동떨어지지 않고 진솔한 느낌입니다. 그 진솔함이 읽는 동안 부모님께서 정정하시고 두 아이의 아빠인 제게 슬프기도 때로는 허허롭고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환각의 나비」는 15년 가까이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할머님 생각에 책장 넘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딸이 치매에 걸려 집을 나간 후 겨우 찾은 어머니의 편안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마지막 장편이 백미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그 가벼움, 그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여지껏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드린 적이 있었을까. 칠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 저렇게 삶의 때가 안 낀 천진 덩어리일 수가 있다니. 암만해도 저건 현실이 아니야,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영주는 그래서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곳은 현실이었으니까. 현실과 환상 사이는 아무리 지척이라도 아무리 서로 투명해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별개의 세계니까."

스스로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인 삶을 함께 고려하는 작중화자인 영주에게서 저를 포함한 독자는 슬프고 불편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환상이 현실과 눈에 훤히 보이듯 그리 멀지 않지만, 영주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별개의 세계라고 애써 얘기하듯이 우리 또한 그 투명 유리벽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아니 깨뜨리려는 시도보다는 더욱 공고히 다집니다. 더 나아가 작가 스스로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면죄부를 나누어 주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지금은 다소 진부한 소재였지만 박완서 특유의 섬세한 묘사로 빨려 들어가듯 읽었던 「공놀이 하는 여자」도 생각에 남습니다. 역시 현실과 크게 멀지 않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돈이면 원수도 용서할 수 있다고 누구나 어렵지 않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의 3억 5천만 원이면 영혼을 팔기에 충분합니다. 작중화자인 아란은 사생아로서 당했던 모든 일들을 3억 5천만 원에 용서해줍니다. 용서라고는 하지만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생각에 잠 못 이룹니다. 하지만 그녀의 집 근처 조각공원의 팻말인 '존재의 아픔'이라는 제목이 자꾸 맴도는 건 물질이라는 현실과 사생아로서의 아픔사이의 괴리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는 드물 겁니다. 박완서의 단편소설은 읽다 보면 어릴 적 부모님과 친지들이 모여 손윗사람에 대한 뒷담화를 나누던 모습, 그 한 귀퉁이에서 귀를 쫑긋하며 듣고 있는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동안 박완서 단편소설을 따라온 대장정 일단은 이렇게 마무리를 해봅니다.

 

 

반응형


Recent Posts
Popular Posts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