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박완서 지음/문학동네
최근 이런저런 일로 독서가 지지부진합니다. 주말이면 사진을 찍고 셀렉팅 작업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지만, 4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기 시작할 정도로 생활에 여유를 잃어버린 이유가 더 클 겁니다. 시시콜콜한 얘기 꺼내 놓기는 뭐하고, 마음먹었던 초심을 붙잡고 다시금 힘을 내봅니다.
각설하고 올 초에 산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중 5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읽었습니다. 솔직히 제법 익숙해졌을 만도 하건만 권수를 거듭할수록 읽기 버거운 것이 또 박완서의 문체인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의무감으로 읽어서 더 그럴 테지요. 조금 더 변명을 하자면, 화자의 밑도끝도없는 이야기의 곁가지들이 너무 많고 다시 큰 흐름으로 돌아오더라도 전혀 다른 결말로 맺음이 다반사인 적잖은 단편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고 펼쳐놓은 곁가지가 개연성이 명확하지도 않습니다. 뭐 반추해서 씹자면야 재미있는 구석도 적지 않긴 합니다만,,,
5권에 수록된 단편들은 87년부터 94년까지 발표한 글로 비교적 잔잔한 편이며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일과 무관하지 않을 테지요.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과 후반부에 수록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마 자신의 이야기일 겁니다. 박완서는 1988년 남편과 외아들을 이어 잃었다고 합니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면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가삐 지고, 남쪽으로 불어갔다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 세상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 리 없다.” (19쪽)
위에 옮긴 글은 「저문 날의 삽화1」의 화자가 자기도 모르게 외우고 있는 전도서의 첫 구절입니다. 아마 이 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5권 전체에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이제 《그 여자네 집》 한 권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조금은 홀쭉한 두께가 서둘러 읽기를 재촉합니다. 숨 좀 고르고 천천히 펼쳐봐야겠습니다. 마지막 권이기도 하고 이제 좀 진지하게 책장을 넘겨 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