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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1권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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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지음/문학동네

 

'한국문학 최고의 유산' '한국 문단의 어머니'이라는 박완서 작가에 대한 칭호의 진면목을 부끄럽게도 알지 못합니다. 박완서 작가가 타계한 지 1년이 지나서야 그 수식어가 붙은 이유와 작가의 아우라 넘치는 필력을 조금은 느껴보고자 단편 소설집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6권 전집을 선택했고 그 중 첫 번째 1권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1971년 3월부터 1975년 6월 사이에 발표된 작품 16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때는 글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처럼 치열하게 산 적도 있었나본데 이제 와 생각하니 겨우 문틈으로 엿본 한정된 세상을 증언했을 뿐이라는 걸 알겠다." 4쪽 '작가의 말'에서 고골리 단편과 같은 향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어졌습니다. 풍자가 있는 글을 유독 좋아하는 편이라 첫 작품인'세모'를 - 설렘으로 - 읽고나서는 그 기대감이 틀리지 않았음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갑니다.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는 읽는 맛을 더합니다. '옴찔옴찔' '와이로' '매명[賣名]' '시앗' '드난' '악마구리 끓다' '우두망찰' 등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들을 공부하는 재미도 함께 느낍니다.


또한, 수록된 작품 대부분의 화자(話者)는 며느리 딸 아내 등등 여성이 많습니다. 처자식의 먹이를 벌어들이는 것 외에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 섣불리 참여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남자를 배필로 원하는 어머니와 딸의 마음이 드러난 <부처님 근처 108쪽>, 자신의 딸이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 어머니의 속마음은 남편과 죽이 맞는 큰딸이 즈이 아버지, 즉 남편을 닮은 남자를 좋아하게 될까 봐 두려워 한다든지 <맏사위, 179쪽> 등 수록된 다수의 작품에서 시대에 휩쓸린 남자들의 뒤에서 말없이 감내했던 소시민 특히 여성들의 아픔을 옴소롬히 담겨있음을 느낍니다.


220쪽의 <이별의 김포공항>편에서 "난리통에 아버지 여의고 어린 나이로 손쉬운 대로 미군 부대 주위를 맴돌며 구두닦이니 하우스 보이니를 하며 잔뼈가 굵고, 부대의 잡역부가 되기도 하고, 장교 식당 웨이터가 되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에 제법 영어회화에 자신이 생기기도 했고, 말을 하다가 애매한 대목에 가서는 어깨를 움찔 추수르며 입을 삐쭉해 보이는 양키들 특유의 제스처까지 익숙해갔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미군은 감축되었고, 어느 틈에 그들도 미군 부대 내에서의 직업을 읽게 되었고, 한국 기관에 직장을 구하려니 학벌이 없다는 설움이 톡톡했고, 이런저런 열등감과 영어를 잘한다는 우월감의 콤플렉스가 필연적으로 그들을 미국행으로 몰았는지도 모른다." 는 대목은 소녀라는 화자의 나이에 걸맞지 않아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아~~'하는 소리 나오게끔 70년대 아메리칸 드림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독자는 마냥 즐겁습니다.


첫 번째 만남이지만 박완서의 필력을 느낄 수 있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단편 역시 설렘과 기대가 되며 특히 2권부터는 각 단편을 대표할 수 있는 공감 글귀를 추려서 서평으로 대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
1권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모
어떤 나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부처님 근처
지렁이 울음소리
주말 농장
맏사위
연인들
이별의 김포공항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닮은 방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재수굿
카메라와 워커
도둑맞은 가난
서글픈 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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