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악어 이야기
레오폴드 쇼보 지음, 북타임 편집부 옮김/북타임
이 책 참 난감합니다. 길지 않은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생각보다 -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 어렵더군요. 인간사 부조리를 꼬집는 풍자소설로 생각했는데 통찰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그저 황망함에 당황스럽습니다. 세계사적 지리적 지식의 부족으로 풍자 뒤의 본 모습을 꿰뚫어볼 수 있는 혜안이 없었기 때문일겁니다. 분명 뭔가 있는데 말이죠...
수록된 단편 수가 만만하기에 한 편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늙은 악어 이야기>는 나일강 유역에서 사는 늙은 악어는 중풍과 류머티즘에 시달리며 사냥도 못하다 결국 증손녀의 아들을 잡아먹으면서 시작합니다. 그 일로 동족들에게 쫓겨나 바다로 나갔고 운 좋게 다리가 10개인 문어를 만나 도움을 받으면서 그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문어가 잠든 사이 다리를 하나씩 매일 그렇게 먹어 버리고 나중엔 남은 몸통을 통째로 먹어버립니다. 사랑했지만 먹고 싶었고 그래서 먹은 맛은 기가 막혔지만 사랑했기에 눈물을 흘렸던 늙은 악어는 문득 고향이 생각나 나일강으로 돌아가고 그곳 원주민들은 늙은 악어를 신으로 추대하며 하루에 한 명씩 스스로 기꺼이 제물이 됩니다. 늙은 악어도 몰랐던 그 이유는 홍해에서 빨갛게 물든 그의 몸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그저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있는 잔인한 늙은 악어의 가죽 속에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감추어 논걸까 궁금할 뿐입니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10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문어, 그리고 빨갱이(?) 악어를 숭배하는 원주민들,,,, 1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레오폴드 쇼보를 생각해 볼 때 그 시대 유럽의 국가들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 단편인 <톱상어와 망치상어>도 비슷한 맥락같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톱상어는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나쁜 상어입니다. 망치 상어를 거느리고 온갖 나쁜 짓을 하며 바다를 누비다 결국 톱상어가 죽인 새끼의 엄마 고래의 꼬리에 맞아 납작해져서 죽는다는 내용입니다. 톱상어와 그의 똘마니인 망치 상어 그리고 고래 전부 상징하는 바가 있겠지요.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닌 역사적인 풍자가 깃들여 있음을 추측해봅니다.
마지막 <민달팽이 개와 천문학자>는 제법 다른 시각으로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계산을 잘하는 민달팽이 개와 천문학자인 맹인 라뉜느씨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초콜릿색 삽살개 - 이 개는 주인을 대신해서 별을 봅니다. - 개 만나서 함께 천문을 연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지구로 돌진하는 행성을 발견하고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라뉜느씨의 독촉에 계산의 어려움을 느낀 민달팽이는 옛 친구 피타고라스 개구리를 초빙하게 됩니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예측한 시간이 지나도 위험이 발생하지 않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제법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겉으로 보였던 것들이 전부 가식이었던 거죠. 오래도록 가식을 신념으로 여기며 살다 보니 인지 부조화의 현상이 오고 이젠 어느 게 가식인지 구분을 못 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봅니다. 피타고라스를 필두로 민달팽이 삽살개 그리고 라뉜느씨가 가식을 벗어 던지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책은 조금은 가식스럽게 이야기를 맺습니다.
서두에 밝혔듯이 솔직히 처음 두 편의 단편은 당황스러웠다고 했는데 알듯 모를 듯 이렇게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알 수 없는 매력이 숨겨진 건 확실해 보입니다. 풍자 속 진면목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자타의에 의해 알게 되는 날 또 다른 흥분을 선사해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가볍게 기분전환 삼아 집어든 책인데 적잖이 당황케 했던 작품으로 기억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