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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조정래 《허수아비 춤》- 멀고도 어려운 길 '경제민주화' - [2012년 11월 알라딘 이달의 TTB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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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지음/문학의문학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루 나누어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

- 마하트마 간디

 

목하 대한민국은 18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의 화두는 당연 "경제 민주화"입니다. 각 진영의 공약에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수 측 후보인 박근혜도 경제민주화의 기수로 알려진(?) 김종인을 필두로 재벌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재벌이 문제가 있기는 한가 봅니다. 시기적절하다고 해야 할지 이런 민감한 시기에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을 읽었습니다.


지난해 조지 오웰의 <199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 격인 미국. 그 대형(大兄)의 나라 한복판인 월가에서 '1%에 맞선 99%의 점령'이라는 구호와 함께 시작된 시위는 삽시간에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미국이 롤모델인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세계는 앙시앵레짐의 세력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이면서 동시에 99%의 깨우침이라는 측면에서 일련의 시위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 《허수아비 춤》은 1%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배하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묘사가 소설인지 르포르타주인지 구분이 되질 않을 정도이니 회화로 치면 극세밀화인 셈입니다.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작가의 말>에서 조정래가 인용한 글인데 이 소설을 써내려가며 느낀 마음이 잘 드러난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다수 작가가 글로서 세상과 다투길 꺼리는 이유도 어용작가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면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특히 노신은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에서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발바리'라고 부르며 경멸했습니다. - 그런 맥락에서 이 소설은 작가의 시대적 사명을 다한 역작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느낍니다.


이 작품은 1% 중에서도 최상위층인 소위 '로얄패밀리'의 재산을 불리고 지키기 위해 지식 테크노크라트 계층 - 소설 속에서는 '골든패밀리'라고 자칭합니다 - 이 어떻게 그들에게 부역하는지와 어쩔 수 없이 모피우스의 빨간약을 먹고 그들로부터 '빨갱이'가 되어버린 힘없는 지식인들의 작은 몸짓이 함께 펼쳐지고 있습니다. 재벌의 대물림을 위해 행해지는 온갖 횡포와 비리는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의 원천인 '비자금' 뒤로 숨어서 영원불멸함을 독자는 직접 목도하게 됩니다.



재벌개혁을 외치다 교수직에서 밀려난 허 교수는 전인욱 변호사를 만나 거대한 팬옵티콘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시민을 위해서 매트리스의 모피우스가 됩니다. 허 교수는 재벌을 개혁할 수 있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으로 대중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불매운동'이라고 성토합니다. 하지만 이미 욕망에 중독되고 빨간약에 내성이 생겨버린 99%는 "어리석은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 사로잡혀 뿔뿔이 흩어져" 그런 쉬운 일조차 요원하기만 합니다.



결국 1%인 일광그룹 남 회장은 승리합니다. 그들을 승리로 이끌었던 박재우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중들의 속성인 '자발적 복종'이라며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예, 세상 사람들 모두가 더욱 잘살기를 바라고, 그래서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관대한 법적 조처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이나 저항감 없이 그저 묵묵히 묵인하고 침묵하며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건 순전히 기업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그러는 거지요.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기들이 더욱 잘살기를 바라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전부 제각각의 교활한 이기주의와 약은 기회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거지요. 그 이기주의와 기회주의를 완전히 뿌리 뽑고 깨끗하게 도려내지 않는 한 대중들은 시민단체 간부들의 선동에 따라나설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몸에서 성욕이나 식욕의 본능을 그 누구의 힘으로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듯이 끝없이 잘살고자 하는 재물욕도 도려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재물욕이 생생히 살아 있는 한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세력에게 충성스럽게 자발적 복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현실로 돌아봅니다. -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 "경제 민주화" 꼭 이뤄야 하겠죠. 새 정부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1%는 속된말로 결코 쫄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탈피하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작가도 알고 있는 듯 소설을 마치면서 "육체와 물질에 얽매인 지능 높은 동물들에 의해 지배되는 한, 이 세계에 희망의 빛이 찾아들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다는 조금은 암울한 말을 남깁니다. 아마도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내건 새 정부가 아무리 재벌 개혁에 힘쓰더라도 욕망 앞에 흔들리는 대중들과 지능 높은 테크노크라트들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나 강자이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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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알라딘 이달의 TTB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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