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박범신 지음/문학동네
"그는 도대체 왜,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그려넣지 않아 오늘날 독도를 제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말거리를 만들었을까. ······ 어찌하여 역사는 그것의 작가였던 그에 대해 고향은 물론, 출생과 죽음, 심지어 본관조차 기록해놓지 않았을까. 무슨 연유로 그에 대해 완강하게 침묵해왔을까."
작가의 말에서...
일찍이 김훈은 그의 책 《풍경과 상처》에서 "김정호라고 하지만, 결국 그는 영원한 익명이다. 세상의 도면을 그린다는 것은 그 세상으로부터 제외된다는 일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제외되어 있는 자만이 온 세상의 강물과 산맥에, 모든 마을과 저자 들에 고향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적고 있는데 세상으로부터 제외되어야 그 세상의 도면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이 지금껏 잊히질 않습니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호는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외면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고증과 작가적 상상력을 더하여 그 역사적 베일을 걷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지도는 서민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응급 시 관아에서 내주었던 잘못된 지도 때문에 죽은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서민을 위해 평생 지도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양반 신분이 아닙니다. 나라에선 그의 정확한 지도가 필요했지만 대놓고 그의 공을 치하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몇몇 깨어있는 양반들이 지도제작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그 정확한 지도를 만들게 한 그의 발걸음 그리고 고충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은 불을 보듯 합니다. 소설 속에서 국경지역을 홀로 헤매다 첩자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탈출하는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떤 대의(大意)가 딸 순실이마저 그렇게 홀로 내버려두고 지도에 평생을 바칠 수 있었을까요.
소설 속에서 다룬 대동여지도에 관한 내용은 고증을 통해 비교적 신뢰할 만한 내용일 것이고 혜련스님과의 인연의 결실인 순실이 그리고 천주학 관련된 부분은 어쩌면 작가 박범신의 펜 끝에서 풀어낸 내용일 겁니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낸 혜련스님의 어머니로부터 순실이까지 이어지는 끊질긴 인연의 고리는 몇 번이고 죽음을 오갔던 작가 박범신이기에 이토록 질기면서 기구한 것일까 싶습니다.
김정호는 순실이가 천주학 때문에 옥에 갇혔을 때 딸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섯 개의 만장(輓章)을 들고 서 있습니다. 죽은 동무 - 죽었다고 생각한 - 를 위한 석 장 그리고 자신과 대동여지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를 그리고 그 지도로써 사람살이를 백번 이롭게 했다 한들, 그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알아주는 이도 드물고, 나라에선 오히려 그걸 빙자해 목줄을 조인다. 짐승에게 잡아먹힐 뻔하거나, 청국은 물론 내 나라의 관리들에게 목이 달아날 뻔했을 때에도, 꿈이 워낙 깊고 높았던지라, 일찍이 지도를 그려온 일을 진실로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평생의 삶이 헛것인 양 덧없다." 라고 생각하는 대목에서 박범신은 세상에서 밀려난 김정호의 인간적 고뇌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피폐할 대로 피폐한 백성들의 살림터를 누비고, 방비가 허술해 아예 무너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든 변방을 가로지르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반란의 현장을 두루 꿰뚫고 다니면서, 처음에는 조금씩 느껴왔으나 마침내 확신이 돼버린 생각"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고산자는 바람이 가는 길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길을 자신의 몸 안에 지도로 새겨넣겠다는 말을 남기며 역사의 베일 속으로 사라집니다. 평생 지도를 위해 살았던 고산자의 생애를 잠시 풀어놓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