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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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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민음사

 

최근에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의 연장선에서 선택한 책입니다. <인간실격>과<직소>두 편이 수록되어 있고 160여 쪽으로 그리 긴 분량은 아닙니다. 제목을 보고 조금은 짐작을 했었지만 가벼운 텍스트와 비교하면 내용은 상당히 무겁고, 읽고 나면 불편한 마음까지 선물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어떻게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을 만큼 이 작품은 제 지각의 스펙트럼을 크게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짧은 소견으로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작품"이라는 소개 글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미성숙한 영혼을 소유한 청소년에겐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성격이 강하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옮긴이는 작품해설을 통해 "예술적 자서전을 시도함으로써 본문에 나오듯 '음산한 도깨비 같은'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작품의 순기능도 있을 것입니다. 즉 - 벤야민이 지적했듯이 - 대중적 정신이상에 대한 일종의 예방접종 기능이 그것인데 "어느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준다는 소개 글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예방접종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듯이 상처받은 모든 영혼이 이 책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고 이것이 앞서 제가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사회적 저명인사나 문인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각각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테고 그 각각의 이유를 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는 폭력을 행사하라면 감히 '도피'라는 단어를 써보겠습니다. 극한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써 '죽음'이라는 그릇된 생각 말입니다. 자포자기·자기혐오·자기파멸로 점철된 인생을 살다간 다자이 오사무에게 그의 죽음은 인간 환멸 그리고 스스로 그러한 인간이 되기 두려운 도피처였고 실제로 적잖은 자살시도를 통해 인간이 되기를 부정합니다. 결국, 다자이는 다섯 번째 시도로 그가 원하던 죽음을 완성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를 새롭게 재조명하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 자신이 빠져들었던 마르크스주의에 상충하는 부유한 출신성분을 죽기보다 혐오했다고 알려지면서 '부의 순교자'라는 수식어도 붙었습니다. - 시대와 문학적 의미는 논외로 하고 그저 순수하게 작가에 대한 짧은 지식 그것도 작품의 음산한 기운만을 확대 해석해서 내린 저만의 결론이 도피에 어울리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다자이에 대한 첫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작중 주인공 요조는 어릴 적부터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나, 악어보다도 더 끔찍한 동물의 본성을 보았고 그러한 본성이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자격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와 절망을 느낍니다. 또한, "아는 사람의 얼굴을 길거리에서 보게 되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전율이 엄습할 정도로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다"고 수기하고 있는데, 요조 - 아니 작가 자신은 - 보통 사람 이상의 예민한 영혼을 소유한 나약한(?) 인간으로 보통사람들처럼 뻔뻔하게 페르소나(사회적 가면)를 쓰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선물에 관련된 일화에서 사람 사이에서의 서투름이 학창시절 주위 사람에게 존경받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공포와 절망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누적되고 잠재태화되어 그 상태로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유독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요조의 아버지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요조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의 기분에 요조를 맞추었습니다. 게다가 부를 좇아 늘 떨어져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요조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인간실격>은 다음과 같은 마담의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어쩌면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소설 속 마담의 입을 빌려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 말 뒤에 숨은 이유가 그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옮긴이는 마지막으로 "요조의 고뇌를 인정할지 하지 않을지가 다자이를 받아들일지 부정할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다자이를 받아들이기가 오늘 저에겐 무척이나 힘겹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본명 쓰시마 슈지[太宰 治 (だざい おさむ], 1909~!1948)는 39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에서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다섯 번째 시도에 생을 마감하였다.


+
기독교가 지배 논리가 되기 전의 서구 사회뿐 아니라 인류사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숭고한 자살에 대한 용인 내지는 존경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왔다. 세네카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칭송한 카토(Marcus P Cato Uticensis, 기원전 95~46)의 '의지적 죽음', 즉 자살은 "자기 목숨으로 자유의 가치를 조명해 낸" 정의로운 죽음으로 평가되었다. 자살이 기독교에 의해 비난의 대상으로 규정되기 200년 전의 얘기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책임하에 완결 짓는 행위는 어느 면에서는 성숙한 인간의 자주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자살은 용인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죽음의 미학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164쪽

+
일본에서는 죽은 이를 '호토케[佛] 님'으로 칭한다. 부처님 역시 호토케 님이다. 다시 말해 죽음은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하고, 미화시킨다는 인식이라 할 수 있다.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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