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지음/민음사
흔들리는 정체성으로 방황하는 17세 소년 홀든 콜필드가 자신의 성장통을 이야기합니다. 마흔의 아저씨가 들어주기에는 다소 앞뒤가 안 맞는 어린왕자식의 주절거림입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 주절거림의 공감을 위해서 잠시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지만 호사(?)스런 홀든 식의 성장통은 그 시절 제게는 맞지 않는 사치라는 생각에 속까지 쓰려옵니다. 부족한 환경에서는 일찍 어른이 되는 법이니깐요.
어쨌든 홀든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동생 피비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229-230쪽
달리 말하면 호밀밭의 아이들은 지금의 홀든 일테고 그 아이들의 '파수꾼'은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의 부재에 대한 불안한 마음의 발로임을 역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당장 사람들이 없는 먼 곳으로 떠나 오두막을 짓고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 대목은 그것은 자신을 지켜줄 파수꾼이 없다고 믿는 현실에서 결국 아이가 절벽에서 떨어지듯이 자신의 순수는 죽고 그가 그렇게 경멸했던 의미 없는 행동으로 가득한 어른이 되는 걸 두려려워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득 몇 년 전에 본 윤성현 감독의 비슷한 제목의 <파수꾼>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기태 역시 정체성을 잃고 방황합니다. 극한의 외로움은 폭력으로 표출되고 급기야 믿었던 친구도 등을 돌리자 후 스스로 자살을 한다는 내용으로 제법 무거운 내용의 영화입니다. '기태'역의 이제훈의 연기가 인상 깊었던 영화였는데 제목 "파수꾼"이 주는 화두를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기태의 파수꾼은 '아빠'가 되었어야 했다고, "자식의 파수꾼은 부모여야 한다"고 이 블로그에서 끼적였던 기억이 납니다. '파수꾼의 존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기태는 홀든의 반대 극점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홀든은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없다고 느꼈을지 몰라도 실제 그의 주변엔 적지 않은 파수꾼이 존재했으니까 말입니다. 훗날 병을 이겨내고 이렇게 저자의 펜을 통해서 회고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청소년은 어떨까요. 어쩌면 청년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각자의 성장통을 겪고 있을 거라고 조금은 희망 섞인 기대를 해봅니다. 하지만 신문이나 뉴스로 전해지는 교육 현실은 그마저도 체념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훗날 두 아들이 좀 더 자라 방황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 책에서 엔톨리니 선생이 홀든에게 해준 말과 같은 말을 해주겠지요. 어른이 볼 때는 의심할 여지 없는 정답이며 또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최선일 테니 말입니다. 지나쳐서도 안 될 일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아이의 아픔을 덜어준다면 아이는 그만큼 험한 세상 살아가기 버거워하게 될 테지요. 그저 옆에서 파수꾼으로서의 신뢰를 보내주면 될 것 같네요. 어쩌다 보니 느지막하게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사실은 예전에 읽은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이 이 책을 밤새워 읽은 장면에서 늦지 않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이렇게 읽게 되었습니다. 재미를 떠나서 할 얘기가 많다는 것은 좋은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엔톨리니 선생님과 홀든의 대화 중 일부를 옮기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찾고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학교에 들어가는 일이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안 돼. 넌 학생이니까. 네 마음에는 안드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넌 지식을 사랑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일단 그 바인즈 선생의 구두 표현 과목의 학점은 따고······"
"빈슨 선생님이에요" 내가 말했다.
······
" 그래 빈슨 선생. 일단 그 빈슨 선생과 그 비슷한 선생들 과목에서 합격을 하고 나면, 그런 지식들에 진정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될 거다. 물론 네가 원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경우에만 말이지만. 먼저 인간들의 행위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고, 좌절한 인간이 네가 첫번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넌 혼자가 아닌 거지. 그걸 깨닫게 되면 넌 흥분하게 될거고, 자극받게 될 거야. 현재 네가 겪고 잇는 것처럼,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이 몇몇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거야. 나중에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네가 그 사람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다름 사람들도 너한테서 뭔가를 배우게 되는 거야. 이건 정말 아름다운 상호간의 원조인 셈이지. 이건 교육이 아니야. 역사이며, 시인 셈이지"
······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총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히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이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 수 있어. 무슨 소린지 알아듣겠어?"
249-250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