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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선물받다. 초인류의 탄생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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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황금가지

 

'지구라는 행성에서 빅브라더로 군림하는 미국의 횡포를 막기 위해선 현생 인류의 지성을 뛰어넘는 초인류가 등장해야만 가능한 것일까!!'

책의 뒤표지를 덮으며 묵직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떠오른 생각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 정도의 강도 높은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것도 오랜만입니다. 21세기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액션 소설로서 손색이 없고 보편적 다수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에 약간의 개인적인 찬사를 더합니다. 더구나 의도적인 - 다분히 한국의 독자를 의식한 의도적인 캐릭터가 맞을 겁니다 - 한국 유학생 정훈의 비중 높은 분량과 겐토를 통한 일본의 구세대들을 사이에 팽배한 우익이념의 비판은 한국인 독자들에게 박수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소설의 큰 흐름을 조금만 언급하면, 인류의 지성을 훌쩍 뛰어넘은 지적 생명체가 태어났고, 그 초(超)인류인 아카리를 말살하기 위한 미국의 공격을 피해 일본으로 무사히 탈출하는 과정, 결국 초(超)지성과 미국의 대결 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0페이지를 조금 밑도는 거대한 분량이 쉴새 없이 돌아가는 필름처럼 거침이 없습니다. 약학 대학원생 겐토에 의해 FBI의 추격을 피하며 가상의 불치병인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약을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큰 흐름 역시 허구의 경계를 흔들며 독자가 마치 실재하는 불치병으로 착각할 만큼 현실적인 묘사가 돋보입니다. 얼개 또한 탄탄하여 군더더기도 적습니다.



초인류인 이카리가 인간의 잔혹성이 두드러진 콩고의 음부티 피그미 부족에서 태어났다는 지리적 배경 또한 개인적인 관심을 더합니다. 콩고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블루 다이아몬드(콜탄) 로 대표되는 가장 많은 자원을 보유한 나라이면서 강대국의 자원 경쟁으로 인해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입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를 통해서 국제사회에 알려지기도 했었는데 휴대폰의 필수 원료인 콜탄의 확보를 두고 스마트폰 1위 기업인 삼성전자도 그다지 편치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한국어판 표지에 인쇄된 화두이고 저자의 물음이며 이 소설의 큰 기저를 이루는 주제입니다. 인류는 자신보다 월등한 지적 생명체의 출현에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물음으로 확장되고 하이즈먼 레포트를 통해서 그 존재에 의해서 인류의 종말로 치달을 수 있는바 묻지 마 말살로 대처하는 것이 그 물음에 대한 소설의 대답입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고 이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 판단이라고 말합니다.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이 독사에게 물려서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로 "결과적으로 뱀을 무서워하는 개체가 많이 살아남아서 자손인 우리 대부분은 뱀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는 설명이 뒷받침된 논리가 그것입니다.

 즉 이질적인 존재의 출현과 경계 및 말살에 이르는 과정은 이성적인 영역이 아니라 열성인자의 유전으로 말미암은 생리학적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해석됩니다. 퇴화와는 다른 의미겠지만, 실제로 호주의 한 고고학자가 쓴 『남성 퇴화보고서』에는 힘세고 강한 남성은 전쟁이나 싸움을 통해서 죽고 열정 인자만이 후세로 이어진 탓에 현재 남성들이 힘없고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소설 속 하이즈먼 박사를 통해서 표출되는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 초인류 말살계획인 네메시스의 책임자 루벤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채 "현생인류는 탄생한 지 20만 년이나 지나도 서로 죽이는 걸 멈출 수 없는 딱하디딱한 지적 생명체이며 다음 존재에게 이 행성을 내줄 때가 되었다"는 하이즈먼의 자조 섞인 말에 맞장구를 치며 동화된 모습을 봅니다.


여담이지만, 뉴스를 보면 선한 행동보다는 각종 범죄에 관련된 뉴스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기에 가뭄에 콩 나듯 한 선한 행동은 미덕(美德)이라고 치켜세웁니다. 또 우리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보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게 더 간단"합니다. 그것도 식욕과 성욕이 채워졌을 때만 말이죠. 이런 생각에 이르니 자꾸만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에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그가 주장했듯이 끊임없는 도덕적 수양(修養)이 없다면 언제라도 잠재되었던 악한 본성이 깨어날지 모를 일입니다. 붓다는 욕구(欲求)를 없애는 것이 선으로 이르는 길을 깨닫고 그 방법으로 고행을 선택한 것을 볼 때도 인간의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악(惡)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 겁니다.



각설하고, 소설 속에서 미국은 "반대 의견의 문제점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 가는 것. 민주적인 결정으로 보이는 독재"로 이어진 거악(巨惡)의 국가로 묘사됩니다.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 바로 그 자체"임을 몇 번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저자는 언제든지 뉴클리어 풋폴 - 핵무기 발사 암호가 담긴 검정색 가방 - 을 작동할 수 있는 의사 결정권자의 미덥지 않은 인격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속된 말로 수틀리면 언제든지 핵을 날려 인류 종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이 현재 핵을 소유한 강대국의 의사결정권자가 아닐까 하는 저자의 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미국 대통령 번즈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소설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초인류 아카리는 무사히 일본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겐토와 정훈은 예거의 아들을 위해 아니 불치의 병을 얻어 고생하는 10만 명의 어린 생명을 고칠 수 있는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미국의 번즈 대통령은 초인류 말살계획인 네메시스를 철회하기에 이릅니다. 

해피엔딩으로 소설을 맺으며 결국 초인류와 피그미족에 대한 제노사이드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해피엔딩을 마냥 즐길 수는 없습니다. 압도적인 초지성의 존재가 있었기에 아프리카로부터 탈출도 가능했고 신약도 개발할 수 있었으며 비뚤어진 미국의 의사 결정권자는 네메시스 작전을 철회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한숨도 함께 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역사의 그늘 속에서 유대인이 그랬고, 집시가 그랬으며 신대륙의 인디언들이 그랬듯이 제노사이드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비뚤어진 인간의 지성을 잣대 삼아 위협적인 존재는 격리 말살 되고 있으며,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콩고의 소년들은 부모를 죽이고 무장단체의 병사가 되어 살인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자원 부국의 제3세계 어린이들이 굶주림과 전쟁으로 죽어가는 현실 또한 탐욕스런 강대국에 의한  제노사이드임을 부인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콜탄이 들어간 약정 끝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불편한 글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초인류의 탄생을 기원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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