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김상훈 지음/살림
"Stay Hungry, Stay Foolish"
"Stay Hungry, Stay Foolish"는 1970년대 중반 「온 세상 카탈로그(The Whole Earth Catalog)」최종판 맨 뒤표지에 쓰여 있는 말로 스티브에게 평생 영감을 준 메시지입니다. 늘 배고프고 어리석은 상태로 머무르라는 뜻이며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언급하여 유명해진 뒤 지금은 스티브 잡스의 대표적인 잠언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2010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이하 스티브)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으며 서점에서는 놓칠세라 스티브를 다루는 평전과 책들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만큼이나 그러한 책들은 평전도 두껍고 한 줄 평을 미루어 짐작해도 대부분 찬양 일색인듯합니다. 세상이 그를 왜 그렇게 추켜세우는지 궁금했지만 두꺼운 책을 집어들기엔 왠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서평에서 소개된 가벼운 책을 알게 됐고 부담 없는 가격에 선뜻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스티브는 미국 사회의 시스템과 마케팅이 만든 인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이 책을 읽은 후에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책은 알려진 사실 위주로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있으며 작가가 더한 양념은 과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애플(Apple)'의 유래 - 전화번호부에서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회사 Atari 앞에 넣고 싶은 욕심에 결정 - 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 넥스트(NeXT)를 차린 배경과 조지 루카스의 그래픽 팀이었던 픽사를 인수한 일, 디즈니와의 계약 건 등은 제법 흥미진진합니다.
오히려 부족한 '사람됨' 때문에 이슈가 된 일화를 적절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괴팍하고 유아적인 성격에서 오는 갈등과 '모든 것을 완벽하게'라는 비현실적인 주장과 터무니없는 강요와 다그침은 지금의 애플이라는 회사를 초고속으로 키우는 데 일조를 했지만, 그 뒤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러한 사연은 이미 신격화되어 다루어지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란 마케팅 뒤로 숨어버린 듯하여 씁쓸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팀원에겐 사람들 앞에서 인신모독은 기본이고 회사 내 경쟁 프로젝트인 매킨토시를 빼앗고 그 프로젝트의 수장이었던 제프 래스킨(이후 MS로 이직)을 회사에서 내 쫓습니다. 또한, 매킨토시에 모든 것을 바친 회로 디자인의 천재였던 버렐 스미스는 게시판에 스티브를 비꼬는 말을 남긴 이유로 결국은 회사를 떠나야 했고 훗날 조울증을 앓고 스티브의 집에 화염병 테러를 시도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고 역사가 그렇듯 함께 했던 워즈니악을 비롯한 많은 천재의 업적은 모두 스티브를 위한 몫이 되었습니다.
스티브의 신화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정사정없었기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모두가 스티브처럼 성공하기 위해서 오직 결과만을 쫓는 삶을 산다면 그런 세상은 지옥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스티브는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굳이 스티브의 방식이 아니라도 또 조금은 느리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과 다르다 해서 인격모독을 일삼는 스티브 같은 사람이 저의 팀장이라면 저 또한 함께 하지 않을 겁니다. 훗날 섬나라 하나를 선물로 약속받고 통치하게 될 꿈에 힘든 일도 참으며 돈키호테에게 충성하던 산초 판사가 되지 않은 한 말입니다.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의 저자 린더카니는 "애플은 중산층과 최상류층의 시장을 겨냥함으로써 업계 최고의 마진율인 약 25퍼센트를 누리고 있다. 델의 마진율은 약 6.5퍼센트에 불과하며, HP는 그보다 훨씬 낮아서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87쪽) 를 보듯이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에는 애플의 제품은 그래픽 관련 기업이나 소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사용자층이 넓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티브의 철두철미한 완벽성과 사용자 중심의 철학은 애플의 제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사용자로 하여금 스스로 애플의 에반젤리스트가 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애플의 인지도는 이제 소수 마니아층이 아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티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이젠 길거리에서 애플의 로고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과거 스티브가 없는 애플은 앙꼬 없는 빵이었습니다. 또 다시 스티브를 잃은 애플의 향후가 주목됩니다.
참고로 매킨토시를 발표하면서 IBM을 조지오웰의 「1984」의 '빅 브라더'로 묘사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던 애플은 음반, 영화, TV 시리즈를 포함한 아이튠즈와 스토어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용자 데이타를 공유하는 아이클라우드는 머지않아 그들을 '빅 브라더'로서 우뚝 설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애플의 최고 경쟁업체?라는 삼성은 단지 애플의 아이클라우드를 접속하는 단말기를 납품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떤 기업이든 견제할 상대 없는 거대 공룡이 되면 그다음 찾아오는 건 암흑입니다.
세상은 사후 '공'과 '과'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지날 수록 '과'는 가려지고 '공'은 부푸는 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파란만장한 스티브의 삶에서 진취적이며 도전적인 그의 일 처리 방식에서 배울 점은 취하고 또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이력 중심의 일대기를 가볍게 접하기에 좋은 책이며 이 책으로 스티브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스티브 잡스를 알기에는 덜 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