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의 행복
 - 8점
김소운 지음/범우사




지난해 이기웅의 《어설픔》이란 책에 사과장수와 아내를 언급한 글귀를 보고 언제고 읽기를 다짐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 알라딘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오래된 책이라 절판을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2011년 3월에 4판 2쇄 발행을 했네요. 기쁜 마음에 서둘러 주문을 넣어 주말에 낭독과 정독을 겸해서 감사히 읽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수필의 배경은 대부분 해방 후부터 한국 전쟁(6.26) 즈음이라 '가난'은 일부 사람들에 한정되기보다는 나라 그 자체에 붙일 수 있는 레토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힘들고 가난한 그 시절이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는 전제가 깔린 따뜻하고 소박한 글쓴이의 정신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필의 눈」편의 142쪽에서 144쪽에 걸쳐서 모든 예술의 근간이 인생에 대한 사랑이지만 유독 수필은 '사랑'이란 밑거름 없이는 피어나지 않는 꽃이며,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세계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고뇌는 커지고 그 고뇌 속에서 때로는 신랄한 비판이나 불길 같은 분노가 치솟을 경우도 있는데 그럴지라도 인간에 대한 체온과 사랑, 그것을 바탕으로 삼았을 때만 수필로서의 의미를 있다고 설파하고 있듯이 이 책의 행간에 흐르는 붓의 기운은 소운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 자체임을 느낍니다.


광복 후 전쟁 전후의 시대라 더함이 있을까만은 인간은 분명 향기보다는 악취를 더 많이 풍기는 일종의 공해 동물이라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아니 세월이 한참을 흐른 뒤에도 그러한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행간을 타고 흐른다는 사랑의 기운은 텍스트를 통해서 느껴지는 코를 찌를 정도의 악취를 몸으로 느낀 후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두레박」편에서 "원수끼리 길을 가도 5, 6일을 두고 동고동락한다면 정이 통하련마는, 이 족속들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종들일까?…… 그날 그 우물가에서 느낀 내 절망과 비애를 나는 일생이 다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라며 비통해한 김소운의 사무치는 비통함에 그 장면을 실제로 그 지옥도 같은 상황을 직접 목도하는 착각을 하지만, 그 시선의 뒤에는 서로 보듬기를 바라는 소운의 간절한 바람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깨물면 정작 자신은 모르지만 주변 사람에게 기막힌 향기를 풍긴다는 벌레이야기로 시작하는「향충」편에서 구질구질한 인간사회에 속에서 그런 향충이 아쉽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이 떠날 날이 없고, 뭇 사람의 마음에 눈물과 감동을 불어넣어 주는 향충은 분명 있으며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도 이웃의 불행을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가짐 하나면 우리들 자신도 향충이 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강변하는 모습은 김소운 스스로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음을 목도하는 대목입니다.


스스로 "40여 년을 두고 글이란 것을 써 오면서도 한 번도 자신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스스로를 낮추었지만, 수록된 수필을 통해서 만난 글들은 찰스 램'이나 '몽테뉴'에게 붙여진 '명수필가' - 아직 그들의 글을 접해보진 못했습니다만 - 라는 호칭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수필이란 장르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수필의 눈」에서 저자 스스로 글을 쓸 때 마음에 새겨 온 몇 가지 메모랜덤을 소개하고 있는데 공감되는 바가 있어 여기에 옮겨 봅니다. 


독자란 '행복'을 싫어합니다. 독자와 관련 없는 나 하나의 기쁨, 나 하나의 즐거움은 되도록 숨겨 두는 것이 좋습니다. 

독자 자신도 생각하고 느껴야 할 권리를 가집니다. 쓸말을 다 써버리지 말고 읽는 이의 몫도 남겨 놓아야 합니다.

'나'란 자신이 얼굴을 내밀 때는 독자와 나 사이에 공통된 무언가가 반드시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은 한갓 신변잡기의 요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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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3일에 작성되어 블로그 카테고리 통합으로 이전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