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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우리는 '사진'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학습한다!!

글: HooneyPaPa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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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

 

 

《타인의 고통》은 《사진에 관하여》의 연장 선상에 있는 책입니다. 지난해 《사진에 관하여》를 읽은 후부터 필자에게 '수전 손택' 은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느냐가 아니라 '사진' 그 자체가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유를 이끌었던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을 완전히 소화하기에는 사진의 역사적인 측면에 대한 밑 지식이 너무 부족해 잠시 내려두고 다른 참고 도서를 먼저 보기도 했었습니다. 전작에서 손택은 사진史 관점에서 '사진'의 의미를 다루었다면 《타인의 고통》에서는 근대 제국주의적인 세계사 속에서 기록의 차원을 넘어 '사진'이 어떻게 이용됐는지를 조금은 불편한 이미지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록 편>까지 모두 정독하고 나서도 '타인의 고통' 에 대해서 손택이 이야기하는 결말을 놓쳤고 - 늘 그렇듯이 손택은 명확한 결론을 주지 않습니다. -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좁은 식견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맥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싶어하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라는 점이며, 사진으로 학습된 타인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우리의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이미지는 뭔가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서 앗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세계사적으로 유럽과 미국의 대립 그리고 제국주의적인 미국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유발한 주체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손택은 고통을 담은 사진들은 매우 강렬하며 사람들은 그러한 사진을 보고 싶어한다고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이야기합니다. 직접 든 예로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자동차 충돌 현장 옆을 지나칠 때 운전자들이 차의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부분 운전자들은 뭔가 소름끼칠 만큼 섬뜩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145쪽)" 라는 대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고통의 기록' 측면에서 사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는데 손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예시 기능은 의견, 편견, 환상, 잘못된 정보 등을 그냥 놔두게 만든다. 대부분의 경우, 예닌 공격으로 죽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숫자가 팔레스타인 관리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낮다는 정보(이스라엘은 늘 이렇게 말한다)는 남김없이 파괴된 난민수용소의 건물들을 찍어 놓은 사진들에 비하면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해 왔다. (129-130쪽)

유명한 사진 이미지들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에 깊이 각인되지 못했거나, 남아 있는 이미지가 별로 없는 잔악 행위들은 훨씬 더 푸대접을 받는다. 예컨대 1904년 독일의 식민 정부가 나마비아의 헬레로족을 완벽하게 몰살시키기로 작정한 사건, 일본이 중국을 습격한 사건(특히, 1937년 12월 중국인 40만여 명을 학살하고 8만여 명을 강간한 이른바 난징 대학살 사건), 1945년 베를린 주둔 소비에트 사령부의 묵인 아래 승전을 거둔 소비에트 병사들이 1백여 명의 부녀자들과 3만여 명의 소녀들을 강간한 사건(이들 중 1만여 명이 자살했다) 등이 좋은 예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건들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130 쪽)

 

전쟁(보도) 사진의 역사는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에서 시작되었고 초기 대다수의 보도 사진이 조작으로 드러났으며 지금도 전쟁 당사자와 그 밖의 국가 입장에 따라 적절히 소비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여전히 세계의 분쟁 지역에서 고통받는 타인들의 사진이 고스란히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그런 사진을 천연덕스럽게 쳐다 볼 뿐입니다.


손택은 "도덕적 분노를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마치 연민이 그렇듯이 이런 질문들이 이후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까지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략) ...만약 이미지를 통해서 본 것에 관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런 쟁점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텐데.. (171쪽)" 라며 이미지 소비자를 두둔하며 앞으로도 타인의 고통을 담은 사진을 둘러싼 쟁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을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19대 총선에 출마해서 떨어진 김용민의 막말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용민의 막말 뒤에는 미국의 인종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악마화 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차마 눈 뜨고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히죽대며 웃고 있거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던 미군들에게서 우리는 분노를 느꼈지만, '빅 브라더'의 힘 앞에선 그러한 분노조차 그저 타인의 고통일 뿐이었습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독자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사진을 보고 불편해야 합니다. 손택도 얘기했듯이 한 발짝 물러나 '사색'하는 맘으로 그 불편함을 머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사유가 뒷받침되면 우리가 고통받는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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