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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박완서 단편소설집 4권 《저녘의 해후》- 가식의 80년대를 옴소롬히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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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해후
박완서 지음/문학동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적게는 가정에서부터 회사, 크게는 나라도 시끌시끌합니다. 독서의 방법도 문제가 있어 요즘 들어 지지부진함을 더합니다. 그 속내들 조금 들여다보면 조금은 버거운 몇 권의 책을 병렬로 읽는 것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운데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과 기태완의 《꽃 들여다보다》와 장정일의 《생각》과 같은 적잖은 내공을 요구하는 인문학책들을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고 있고 거기에 박완서의 단편 또한 병행해서 읽었으니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박완서의 단편집 6권을 1권부터 내리읽고 있는 터라 처음 느꼈던 충격 - 처음 만난 박완서의 섬세한 문체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 은 권수를 더해가며 조금씩 무뎌지고, 의무감에 이렇게 서평을 끄적거리며 정리하기엔 단지 이 책을 읽었음을 자랑하는 것 이외에 또 어떤 게 있을까 싶어 부끄러움 맘도 없지 않습니다.



박완서식 산문이 벌써 4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지금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 편 한 편 천천히 반추해 다시금 음미해 볼 시간 없이 또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기에 급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록된 작품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례허식을 직접 보고 의미심장한 쓴웃음을 지어 주기에는 책장을 넘김이 적잖이 가벼웠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각설하고, 책 속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 책장을 들추어 기억에 남는 몇 편을 떠올려 봅니다. 시아버지가 죽은 후 아파트를 모른 척 떼먹는 진태 엄마의 그악스러움에 자신의 몫으로 알았던 아파트를 "내 모가지에 마늘 열 접이면 고작인 것을 감히 아파트 한 채를 이고 가려 했으니. 사람이 분수를 모르면 죄를 받는다니까."라며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알고 돌아서는 성남댁 할머니의 이야기인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과 사람 마음 간사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의 일기> 그리고 혹하는 마음에 배경(?)이 될 수도 있는 은퇴한 은사에게 강아지가 빌미가 되어 그 끈을 끊기자 후회하지 않던 화자에게서 제목과는 다르게 뭔가 씁쓸한 후련함을 느꼈던 <비애의 장>이 인상 깊습니다.


박완서의 산문집을 읽는다는 것은 그녀가 직접 몸으로 받아들인 가식적인 시대를 함께 좇아가며 그녀가 느끼고 본 세상을 오롯이 목도하는 과정입니다. 전쟁을 겪고 유신정권, 군부정권을 살아온 그녀가 본 가식의 사회를 말입니다. 지금까지 달리는 차창을 통해 스치듯 봤다면 마지막 두 권은 서두에 밝혔던 것처럼 단편들을 저작(咀嚼)하듯 천천히 읽고 다시 한번 반추해서 음미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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