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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 - 생물학자가 차려 준 교양과학도서의 푸짐한 코스요리를 즐기다!

글: HooneyPaPa 2019.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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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
최재천 지음/명진출판사

 

 

얼마 전 우연히 최재천 교수의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EBS에서 다윈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제법 인상 깊었던지 채널을 멈추고 그렇게 20여 분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런 일이 있고  서점에서 심심찮게 최재천 교수 이름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결국 생물학자의 서평집이라는 조금은 호기심 어린 마음에 선뜻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무소유》에서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학생들에 대해 '우습다!' 라고 일갈 하신 이후로 느낀 바 있어 독서를 취미가 아닌 생활로 받아들이고 또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진전은 있다고 느끼지만 역시 무계획적인 - 어느 정도 방향은 있지만 -  책 읽기에 막연한 불안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독서 일기를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수많은 책 그리고 그 책을 잘 읽는 법에 대한 책 또한 숱하게 넘쳐나니 말입니다. 


역시 같은 책에서 법정 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은 '양서'를 많이 읽어야겠죠.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생각하는 독서는 먼저 산 사람들의 사람공부였습니다.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이죠.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무소유》를 읽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적잖은 책을 읽으며 조금씩 공고해졌습니다. 하지만 《통섭의 식탁》을 읽고 난 지금 그러한 생각은 조금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스스로 '책벌(冊閥)'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머리말에서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취미로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하는 독서도 때론 필요하리라. 하지만 취미로 하는 독서가 진정 우리 삶에 어떤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조금 공허해진다. 우리의 눈은 삼차원 입체를 보도록 진화한 기관이다. 그런데 누군지는 몰라도 최초로 책을 발명한 양반이 이차원 평면으로 디자인하는 바람에 거의 모든 사람의 눈이 다 망가지고 말았다. 눈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취미 독서를 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나는 독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었는데 술술 읽힐 리는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 한 권을 뎄는데 도대체 뭘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기왕에 읽기 시작한 그 분야의 책을 두 권, 세 권째 읽을 무렵이면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기고 잇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차츰 내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결국 독서를 "일"로 간주하고 공부로서의 '기획 독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배움 중의 가장 훌륭한 배움은 배우는 줄 모르게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는 의미에서 위의 글은 조금의 어폐가 느껴지기도 하고 다분 과학자다운 말이지만 공감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과학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자연과학도서만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닐 겁니다.


덧붙여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선택한 책이라면 굳이 끙끙대며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에 대해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리 있게 말하면서 적절한 인용문이나 단어의 사용은 그 글의 품격을 높이지만 말입니다.


《통섭의 식탁》에 소개된 책들은 몇 권을 제외하면 과학관련 - 특히 생물학 - 교양도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통섭'이라는 개념을 우리 사회에 처음 화두로 던진 최재천 교수는 이후 놀라울 속도로 우리 사회 곳곳에 파고드는 것을 보면서 비빔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비빔밥의 나물들 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의 조화,,,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합하고 또 통섭의 결과인 새로운 그 무엇에 대한 언급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천천히 되짚어 보면 통섭의 기저에 깔린 학문은 역시 '인문학'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인간(人間) - 한자어 풀이대로 - 이기 때문에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적 허영심일 수도 있겠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을 적잖게 소개받았습니다. 다 읽어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은 읽어볼 참입니다.


한가지 꼭 하고 싶은 말은,,, 천종식 《고마운 미생물, 얄미운 미생물》 편에서 주사라도 한 대 찔러주지 않으면 돌팔이 취급을 하다가도 항생제 처방에 하루 이틀 먹고 몸이 편안해짐을 느끼면 곧 '약은 몸에 해롭다.'는 인식에 약의 복용을 멈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의무까지 들며 처방받은 모든 약을 끝까지 복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꼭 그랬답니다. 그런데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자면 왜 그 얘기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나라 의사와 약사들은 이 사실을 몰랐던 걸까요?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서 항생제 내성이 가장 강한 균들의 천국으로 만든 건 국민이 아니라 의사와 약사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복약지도를 통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서 문화로 자리 잡게 해야 했을 일은 누구도 아닌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의료계는 '공익광고'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철저하게 지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통섭의 식탁》에서 푸짐하고 맛깔나는 식사를 마친 것 같습니다. 레시피는 따로 없고 최재천 교수가 추천한 코스요리를 그대로 즐겼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텍스트를 소화하기 위해 거치는 일련의 저작(咀嚼)의 수고스러움을 생각하면 누구 말대로 숟가락만 든 느낌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몰랐거나 막연했던 과학적인 지식에 관한 이야기들을 배부르게 먹고 잘 소화한 것 같습니다.


끝으로 나에게 맞는 '기획 독서'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안을 만들 필요를 느꼈고 더불어 꼭 하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저자도 강력 추천한 열대 여행입니다. 지구 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죽기 전 꼭 한 번 열대지방에 가서 최재천 교수가 말한 그 '생명'을 직접 보고 느껴 보고자 합니다. 열대 여행 이후에는 평소 꿈꾸던 사막도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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