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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김훈 《풍경과 상처》- 혼돈의 결, 그리고 미완의 독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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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
김훈 지음/문학동네

 

1.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2.
책의 다 읽고 뒤표지를 덮습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느닷없이 큰 숨이 터져 나옵니다. 언제부턴가 '김훈' 이 쓴 글을 앞뒤 없이 좇아 읽고 있습니다. 그 속내를 굳이 들여다보면 얄팍한 지적 허영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훈의 문장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집어든 책 《풍경과 상처》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마지막 장까지의 여정이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그동안 길들여진 맛깔스러운 - 적어도 내게는 - 김훈의 텍스트가 지금은 먹기 힘든 삭힌 홍어 같습니다. 큰 코 다친셈입니다. 눈으로 인지한 텍스트의 증발과 다시 읽기의 반복······, 결론부터 말하면 마지막 책장까지의 눈으로 흡입은 했지만 뇌가 인지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 묶인 글들이 자신의 "마음속 오지의 풍경"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며칠을 춥고 질퍽거리는 갯벌에 갇혀 헤맨 느낌입니다. 그래선지 앞서 내뱉은 큰 숨엔 그 헤맴의 벗어남에 대한 후련함마저 섞여 있습니다.



3.

    오래 전에 쓴 글이다.
    여기에 묶인 글을 쓰던 시절에 나는 언어를 물감처럼 주물러서 내 사유의 무늬를 그리려 했다.
    화가가 팔레트 위에서 없었던 색을 빚어내듯이 나는 이미지와 사유가 서로 스며서 태어나는 새로운 언어를 도모하였다.
    몸의 호흡과 글의 리듬이 서로 엉기고, 외계의 사물이 내면의 언어에 실려서 빚어지는 새로운 풍경을 나는 그리고 싶었다. 그 모색은 완성이 아니라 흔적으로 여기에 남아 있다.
     나는 이제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 나는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추수하듯이 챙기는 글을 쓰려 한다.
     그러하되, 여기에 묶은 글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 오지의 풍경을 보여준다.

    2009년 가을 김훈 쓰다



4.
"강진의 여름 바다에서, 공간은 시간을 불러들여 공간성을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시간과 공간이 서로 손짓하고 스며드는 접경에는 아무런 자취가 없었다. 시간과 공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어떤 곳에 사유의 질서를 건설하는 것, 그것이 자유다, 라고 그 명증한 여름 바다 앞에서 내 치매한 마음은 울부짖었으나 그 울음은 시간이 새로워지지 않는 병을 앓는 파충류나 시조새의 울음일 뿐, 말로 환생될 수 없었다. 나는 말을 거느리고 바다의 명증성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바다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 혹은 거기에 대하여 ‘명증하다’라고 말하는 자 사이에는 한바탕의 무간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태곳적 울음으로 가득한 강진 앞바다에서 말로서 환생 될 수 없는 그의 한계를 무간지옥으로 표현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마음 속에 무간지옥을 소환하고 그 지옥안에서 상처 입은 김훈이 울부짖었으나 난 그의 울부짖음의 '결'를 판독할 수 없었습니다. 시조새의 울음과 닮아 있는 그의 울부짖음을 이해하기 위한 고고학적 판독의 수고로움이 싫었고 텍스트화된 울음의 각각의 테제들 속에서 그의 높디높은 울부짖음만 귀가 아닌 눈으로 확인합니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그것에 응답해야 한다고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합니다. 보듬고 살핌을 필요로 하는 상처는 치부이기도 합니다. 치부는 숨습니다. "내 울부짖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 그 어디 있는가?"라며 외로움 가득 실어 포효하는 그 울부짖음 속에 숨은 치부의 시원始原이 어쩌면 내 마음 한켠의 그곳과 닮았나 애써 견주어보지만 실체 없는 것을 견줌에 좌절하고 화답마저 포기합니다.

김훈의 마음 속 오지풍경은 카오스 즉 혼돈의 풍경입니다. 사유들이 죽어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 부유하며 여기저기 부딪혀 상처입다 어느 순간 살아서 지상을 떠돎을 반복하면서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고 함께 가고 삶이면서 또한 죽음이기도 한 그러나 결국 시간의 부재 속에서 철저하게 홀로 살아있는 풍경의 시간을 보여줍니다. 그가 그려낸 이러한 사유의 무늬들은 카오스 즉 혼돈의 결일 것입니다.



5.
나는 김훈의 글에서 외로움을 봅니다. 그래서 그 외로움에 답하여 한 토막 써봤지만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이 글은 당분간 미완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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