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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김만중 《구운몽九雲夢》, 민음사 - 얄미운 캐릭터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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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민음사

 

 

"네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으니 내 무슨 관여함이 있으리오? 네 또 말하되, 인간 세상에서 윤회하는 꿈을 꾸었다 하니 이것은 인간 세상의 꿈이 아르다 함이라. 네 아직 굼을 온전히 깨지 못하였도다. 장주(莊周)가 굼에 나비 되었다가 나비가 다시 장주가 되니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짜인지 분변하지 못했다.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니뇨?" - 231쪽

 

주인공 성진과 팔선녀(八仙女)가 꿈을 꾸니 아홉 개의 구름 같은 꿈 - 九雲夢 - 이 소용돌이치며 뒤섞입니다. 성진은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팔선녀는 두 명의 부인과 여섯 명의 첩으로 성진의 욕정을 해소합니다. 넘치도록 누리기만 한 성진이 어느 날 문득 꿈에서 깨고 보니 "그 좋은 세상들이 모두 꿈이로소이다. 그러니 속세의 모든 욕망은 부질없는 것이다"는 매우 진부하고 전형적이지만 조금은 환상 같은 이야기입니다.


독일의 헤르만 헤세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싯다르타에게 속세의 삶을 주었고, 그보다 2백 년을 앞선 조선의 서포 김만중은 《구운몽》에서 성진에게 속세를 삶을 하룻밤 꿈에 실어 세상 모든 부귀영화와 욕정을 맛보게 했습니다. 헤세의 싯다르타는 속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윤회의 고리를 끊었지만, 서포의 성진은 꿈을 깨서도 장자의 호접몽처럼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육관대사의 꾸지맘을 듣고서야 그 모든 것이 하룻밤 꿈임을 깨닫습니다.


불교에서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귀영화와 욕정이 일장춘몽처럼 허허롭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고행의 과정이라면 헤세의 싯다르타보다는 좀 더 판타지와 같은 김만중의 성진이 이해의 범주에 더 가깝습니다. 스스로 깨우치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간 싯다르타보다는 스승 - 육관대사 - 의 도움으로 부귀영화와 욕정의 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성진이 도 닦는 선계(仙界)의 사람임에도 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일반 범인(凡人)이 깨달음에서 멀리 있는 것이 또 얼마나 자연스러운지요.


그런데 무엇인가 조금 불편합니다. 성진의 꿈에는 늘 넘치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고통 편력없이 문득 깨달을 수 있다... ? 서포가 이 고소설을 쓴 이유가 유배 시절 어미니 윤씨 부인의 무료함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면 그 시절 자체가 고통과 멀리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현실도피적 환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견디기 힘든 무거운 고통 속에서 그저 살아지다가 먼 훗날 노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고통 편력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위화의 《인생》에 나오는 푸구이 노인 같은 그런 인생이 더 현실적입니다. 솔직히 구운몽의 성진은 좋아할 수 없는 얄미운 캐릭터입니다.



깨달음이다 뭐다 주절거렸지만 그저 가볍게 읽고 넘길만합니다. 이 소설이 갖는 시대적/문학적 의미는 학생 신분의 우리 아이들의 몫일 테고 단순한 지적 허영심에 펼쳐 든 만큼 스토리 편력에 만족하고 책을 덮습니다.

 

 

 

판매처

 

구운몽

서포 김만중이 지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고전소설. 조신 설화의 영향을 받아 입몽-꿈-각몽의 구조를 통해 인생의 덧없음이라는 주제를 전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환몽구조이지만, 꿈 속의 삶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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