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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이 있던 날 이 곳 수종사를 둘러보려고 조금 이른 아침에 발걸음을 했답니다.
사진위주로 사찰탐방기 시작해봅니다.
사진위주로 사찰탐방기 시작해봅니다.
수종사 일주문 옆의 주차장입니다.
이곳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해서 1단으로 거북이 운행을 해야 했습니다.
조금 긴장했지만 사성암(전라남도 구례에 위치)을 다녀온 경험도 있고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수종사로 이어지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으로 운길산 수종사(雲吉山 水鐘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불이문까지 이어지는 명상의 길을 지나게 됩니다.
명상의 길 끝 자락에 위치한 제법 큰 미륵부처님입니다.
수종사 불이문 (水鐘寺 不二門)
이문을 들어서면 머리를 비우세요~~
^^*
불이문(不二門)을 옆으로 감로수를 뿜어내는 다람쥐 모습의 음수대가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마름을 달랠 수 있답니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왼쪽 길은 수종사로 오른쪽은 운길산 정상으로 이어집니다.
정상까지는 40분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10분남짓 시나브로 걸었더니 드디어 수종사(水鐘寺)입니다.
햇살이 눈부신 게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삼정헌 찻집 옆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으로
가운데 다리로 연결된 섬처럼 보이는 곳이 두물머리랍니다.
아마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그리고 초의선사께서 내려다보는 풍경과 별반 다를께 없겠지요.
아파트와 다리만 빼고요~ ^^;;
정면으로 끝에 조금 보이는 문이 해탈문입니다.
그 뒤로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도 조금 보입니다.
산사에는 이러한 석상이 많이 보입니다.
사찰이 나무로 되어 있어 취약한 불을 예방하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 이녀석의 이름을 들었는데 까먹었습니다.
ㅠㅠ
산신각(山神閣)
왼쪽으로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부도, 가장 오른쪽은 수종사 오층석탑(유형문화재 22호)입니다.
대웅전 내부의 모습입니다.
미래에 오실 미륵불 그리고 양쪽으로 미륵불을 보필하는 보살이 모셔져 있답니다.
해탈문(解脫門)입니다.
뒷모습은 대명스님이세요~ ^^
수종사의 또 하나의 볼거리인 보호수로 지정된 오백 년이 훌쩍 넘은 은행나무입니다.
크기를 보니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
은행나무 앞에 세워져 있는 수종사 사적기
법명 대명(大命?)을 사용하시는 스님이세요.
수종사의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신 대명스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성불하세요~~ ^^
수종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이런 약수터가 나옵니다.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면서 수종사 탐방을 마무리합니다.
사찰에서 만난 개인데 아쉬운지 가는 길을 배웅나오는 듯 해보입니다.
돌아가라고 하니 저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사찰로 돌아갔답니다.
^^*
워크샵에 가기전 이곳을 둘러볼 요량으로 아침에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에 찾은 수종사,
뜻하지 않은 가슴을 트이게 하는 풍경과 고즈넉한 산사의 아침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답니다.
마치면서 수종사 관련 정보를 일부 첨부합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에 찾은 수종사,
뜻하지 않은 가슴을 트이게 하는 풍경과 고즈넉한 산사의 아침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답니다.
마치면서 수종사 관련 정보를 일부 첨부합니다.
[수종사의 위치]
운길산 남쪽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이다. 지금의 절에서 약 200m 아래쪽에 석축 50m와 제법 큰 절터가 있고 근처에 기와편과 도자기편이 많이 산재되어 있어 당시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수종사의 유래]
다산 정약용의 <수종사기>에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사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 그래서 수종사라 한다"고 전한다.
세조가 1458년(세조4)에 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강원도 오대산에 갔다가 남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증 용진강 이수두(지금의 양수리)에서 밤을 맞아 야경을 즐기는데 운길산쪽에서 문득 종소리가 들려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니 폐허된 천년 고찰이 있고 암굴에 18나한이 열좌하였으며 바위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를 낸다고 아뢰니 세조는 이듬해(1459) 그 곳에 절을 다시 짓고 수종사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운길산 남쪽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이다. 지금의 절에서 약 200m 아래쪽에 석축 50m와 제법 큰 절터가 있고 근처에 기와편과 도자기편이 많이 산재되어 있어 당시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수종사의 유래]
다산 정약용의 <수종사기>에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사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 그래서 수종사라 한다"고 전한다.
세조가 1458년(세조4)에 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강원도 오대산에 갔다가 남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증 용진강 이수두(지금의 양수리)에서 밤을 맞아 야경을 즐기는데 운길산쪽에서 문득 종소리가 들려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니 폐허된 천년 고찰이 있고 암굴에 18나한이 열좌하였으며 바위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를 낸다고 아뢰니 세조는 이듬해(1459) 그 곳에 절을 다시 짓고 수종사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수종사 홈페이지]
http://www.sujong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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