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시아란 분파라는 뜻으로 수니파(정통파) 이외의 분파를 총칭한다. 교조 마호메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 후계를 둘러싸고 대립이 시작되면서 시아파가 생겨났다. 수니파는 마호메트의 후계자를 정통 칼리프왕조와 역대 칼리프왕조의 칼리프(계승자 ·대리자라는 뜻)로 보는데 반하여, 시아파는 마호메트의 사위 알리(제4대 칼리프)만을 정통 칼리프로 보고, 그 사자(嗣子)들을 이맘(종교지도자)으로 보았으며, 유파마다 해석이 다른 신성(神性)을 부여하였다. 그성립은 당초 정치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졌으나, 나중에 동방 기원(起源)의 이교적 요소가 다분히 혼입되어, 수피즘과 같은 신비주의적 색채가 가미되었다. 그 유파는 아주 많아, 수니파에 가까운 자이드파와 12이맘파 ·7이맘파(이스마일파) 등이 있는데, 7이맘파에서는 암살교단으로 악명높은 니자리파와 시리아 ·레바논에 현존하는 도루즈 교도와 같은 특이한 유파가 생겨났다.



수니파

수나파·정통파라고도 한다. 수나(Sunna:관행·규례)를 지키는 사람들의 파를말하며, 시아파가 형성된 뒤 이슬람 공동체 안에 전통적 행동양식을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 특히 공인의 전승(傳承:하디스)을 인정하고 4명의 정통 칼리프를 지지하며, 사법학파(四法學派)의 어느 한 편에 속하는 것을 이렇게 부른다. 시아파 형성이 마호메트의 후계자인 칼리프 알리(재위 656∼661) 및 그 후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에 바탕을 두었듯이, 이들의 형성에도 칼리프 제도의 확립과 보유, 아랍 민족의우월권 확보와 같은 정치적 이유가 작용하였다.

그러나 시아파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고 비합리주의적인 신학을 발전시켜 간 데 비해, 이파에도 일탈(逸脫)과 혁신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정통파 신학이 나타나 많은 법학자·신학자가 수니파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 대표적 신학자가 알 아슈아리와 알 가라리이다. 이 파의 연구 중심지는 아바스왕조에서는 바그다드였으나, 1258년 이곳이 몽골군(軍)에게 정복되고 아바스왕조가 멸망한 뒤로는 카이로의 아즈하르대학교(972년 설립)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아파 교도가 이란을 중심으로 약 3,000만∼4,000만 명이 되는 데 비해, 수니파 교도의 수는 약 4억으로 아랍·이집트를 중심으로 이슬람권의 주요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보면

모하메드가 632년6월8일 메디나에서 갑자기 죽었을 때 모슬렘 사회는 커다란 지도력의 위기에 봉착했었다. 모하메드는 후계자 지명에 대해 어떤 지침도 남기지 않았다. 모하메드가 마지막 예언자였으므로 새로운 지도자는 '예언자'라고 불릴 수 없었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알라로부터 새로운 계시가 올 수 없었고, 모슬렘은 코란과 하디스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모하메드의 장례가 준비되던 때 매우 중요한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슬람교가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므로 초기의 모슬렘 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간의 구분이 없었고, 각 지역의 세속 정부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메카에 있는 모슬렘과 메디나에 있는 모슬렘 간의 싸움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두 그룹 모드 자신들이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였다.

메카의 모슬렘들은 모하베드와 가장 친하고 가장 신뢰받는 친구인 아브 바크르를 선택했고, 그는 칼리팟 아술 알라(하나님의 사자의 후계자)라는 이름을 얻었고, 첫 번째 칼리프가 되었다. 아부 바크르는 이슬람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것은 이슬람교의 수니파가 지지하는 철학이다.

그러나 메디나의 모슬렘들은 모하메드가 자신의 사위인 알리를 후계자로 남겼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모하메드의 딸인 파티마와 결혼한 알리는 선거 과정을 통해 선출되었다. 알리와 그의 지지자들은 바르크의 후계자 임명에 반대하였고, 결국 이슬람교의 시아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시아파는 이슬람교가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계시이므로 지도자가 종교적 권위를 가져야 된다라고 느꼈다.

수니파 이슬람은 코란이 최종적인 계시이고 더 이상 이에 첨부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 정통파로 인정되었다.

시아파 이슬람은 이맘이라고 부르는 종교지도자를 믿고, 그가 신의 계시를 더 받아 코란에 덧붙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시아파 이슬람은 더욱 극단주의적이라고 여겨진다. 지도력의 문제는 모든 모슬렘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스마렐리스, 무피, 알라위, 샤피, 하니피리 등등의 많은 분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모든 모슬렘은 동일한 근본적인 가치관을 믿지만 이러한 가치관은 지역과 분파에 따라 많은 다름 관습과 의식에 의해 표현된다.

모슬렘 해의 시작은 무하람이라고 불리고 이는 거룩한 달이라는 뜻이다.
시아파 모슬렘들은 이 달 알리의 아들이자 모하메드의 손자인 후사인과 후사인의 아들 카심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한 애도의 시간으로 지킨다. 무하람 월의 7일부터 10일까지 그 비극적인 사건의 낭송과 젊은이들이 날카로운 칼로 피가 흐르기까지 자신을 치면서 행진하는 의식들이 행해진다.

수니파 모슬렘 또는 이 의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칼로 치지는 않는다. 사이파 모슬렘 순교의 구속적인 성격을 더욱 강하게 믿는다.

기도 중에 샤피파 모슬렘은 그들의 손을 옆구리에 살짝 댄체로 기도한다. 여자들은 샤피파나 수니파나 그들의 손을 가슴에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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