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김병수 지음/프롬북스
잠시 쉼표를 찍고 싶어 읽은 책입니다. 평소 제목에 서른이나 마흔 같은 나이를 떡하니 달고 있는 책들은 장삿속이 다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나이 마흔이고 보니 뻔한 꼬임에 이렇게 못 이기는 척 넘어갑니다. 더구나 책장을 넘기면서 어느새 음독도 하고 밑줄을 긋기도 하고 포스트잇으로 태깅하는 모습까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부터 달게 될 '중년'이라는 꼬리표에 심사가 뒤틀리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나 봅니다.
저자는 서울아산병원 정신과에서 전공의로 스트레스와 우울증 분야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중년들을 얼마나 많이 보고 그 아픔을 같이 했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글이 한층 무겁게 다가옵니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한의사 이기웅의 《어설픔》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 책 역시 고통받는 중년들을 위한 저자만의 처방전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조금 더 담대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년의 힘과 지혜가 더 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삶에 시련이 닥쳐오고,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중년의 가슴에서 뜨거운 열정이 사라지지 않기를, 삶에 대한 헌신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이 희망합니다. 9쪽"
어차피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내맘같지 않습니다. 힘듭니다. 그것이 쌓이면 정신이 멍들고 병들게 됩니다. 앞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이 겪은 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연히 처방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처방전을 우리는 잠언箴言이라 부릅니다. 무수히 많은 잠언 중에 마음에 드는 것 하나 골라서 자신의 처방전으로 삶으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애써 기피합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랍니다. 내가 지금 무지 화가 나는데 다짜고짜 우울증이라고 하면 울화가 치밀 노릇이지요. 어쩌면 마흔은 피하지 않고 가만가만 저자의 말에 귀 기울여줄 나이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자는 마흔을 꼭 집어 '우리는 원래 이런 존재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라고 '뻔한 꼬임'을 두둔해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원래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도록 진화하도록 했다는 주장인데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눈을 감고 5분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 보자.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찬찬히 관찰해보자.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더오르는 생각들이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지, 아니면 걱정과 불안, 신경 쓰이는 일이 더 많은 지 곰곰히 따져보자.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70% 정도는 부정적인 생각을 30% 정도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주의, 걱정, 불안과 관련된 생각을 더 많이 하며,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려 한다. 이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영어 표현 중에 'mind' 라는 것은 마음이나 정신을 뜻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꺼려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분 좋고, 행복한 일도 많지만 신경 써야 하고, 스트레스 받고, 골치 아프고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도 많이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 평화로운 것 보다는 위험한 것에 더 많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 인간의 마음은 기분을 좋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숨겨진 위험과 위협에 대비하여 생명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진화되어 왔다. 그래서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안전한가?' '나에게 해로운 것은 아닌가?' 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비교하며, 판단하고, 평가한다. 분석, 비교, 판단, 평가를 하는 마음은 사람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든다. 238-239쪽"
즉, 우리는 원래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존재로 거듭났기에 애써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역설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얘기입니다.
또 하나의 공감하는 대목은 '용서'에 관한 이야기인데 "용서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영역 밖에 있는 것"이라 강변하면서 할 수 있다면 마음을 다한 용서는 꼭 필요하지만 "억지로 용서하려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거나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자신을 탓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즉 "용서를 하려고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삶의 목표가 흐트러지는 일 없이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죠.
책을 읽으면서 돌아보니 저 자신도 멍든 곳이 적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멍든 곳을 어루만질 수 있도록 처방전 꼭 챙겨야겠습니다.
"걱정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벌어졌고,
22%는 아주 사소한 것이고,
4%는 바꿀 수 없고,
단지 남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다.
결국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쓸데없다. "
어니 J. 젤린스키, 『느리게 사는 즐거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