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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 적당히 망가지고 적당히 어설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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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민음사

 

점쟁이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이 꼭 자신의 이야기 같아 용하다며 침 튀기고 점쟁이는 그 침값으로 살아간다. 조금은 뜬금없지만, 《황야의 이리》론에 등장하는 하리 힐러는 헤세의 자화상이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 수 있는 - 어쩌면 수많은 위대한 작가가 다 그럴 것이다 - 이야기를 선물하는 점쟁이인 셈이다.

 

의심없이 덮어두고 읽는 명작에 이처럼 점쟁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대든 것은 어쩌면 이 책을 읽은 소위 자타 지식인들이 헤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때로는 심각해지거나 나아가 헤세를 우상화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세계적으로 위대한 작가를 점쟁이 따위와 같은 취급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나잇살이나 먹은 지금의 나에겐 그 어떤 감흥도 없었다는 점을 - 필자의 짧은 지식은 제쳐두고 - 은근히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뭐 간만에 아까운 시간을 들여 읽은 책이니 그냥 덮기는 뭐하고 괴변이라도 끼적이고 넘어가려 한다.


풀 한 포기 없이 먼지만 흩날리는 황야에서 며칠을 굶어 비쩍 마른 이리 한 마리가 쓸일 없는 그 잘난 송곳니를 드러내고 어슬렁거린다. 배고프고 외로운 이리는 곧 죽어도 먼지 날리는 황야가 자신이 있을 곳이고 그곳을 벗어나선 의미 없으며,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최후의 투쟁은 굶어 죽을 바엔 차라리 자살을 생각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렇게 자신이 죽을 날을 정해두고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하리에겐 역설적으로 '삶' 그 자체가 너무나 절실한 것이고 죽지 않고 살아갈 이유를 애써 찾고 해맨다. 군중 속에서 외딴 섬을 만들고 스스로 갇혀버린 하리, 시민사회를 섞일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살아갈 힘이 없고, 스스로 만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훌쩍 뛰어 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이를 어쩌나...

그런데... 황야와 시민 사회의 경계가 하리의 마음속에 있어 그 거리는 하리의 마음 끝에서 끝 다름아니다. 하리의 마음을 휘저어 놀 누군가가 필요하다. 즉 하리는 자신의 맘을 알아주는 이 없음에 화가 난 것이다.


전지적 작가 헤세가 그 불쌍한 하리를 어찌 그냥 두겠는가. 역시나 헤르미네를 중심으로 욕망으로 점철된 환각 세계를 선물한다. 역시 전지적(?) 시점의 소유자인 헤르미네는 하리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결국 그녀와 함께한 하리는 적당히 망가진채로 끝에 이르러 결국은 잊어버린 미소를 되찾게 된다. 그리고 시민사회로 돌아올 것을 예고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헤세의 또 다른 소설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에게 욕망으로 똘똘뭉친 속세의 모든 일을 경험하게 하고 그것의 부질없음을 스스로 깨우치게 했던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뭔가가 다르다. 싯다르타에서 욕망으로 가득한 속세가 부질없음을 위한 경험이라면 헤르미네를 중심으로 겪는 욕망세계는 시민사회로의 경계를 넘기 위한 사다리인 셈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치고 외롭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 사이에서 더 외로운 법, 하리가 황야에서 시민 사회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자신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지금을 사는 독자들에게 과연 점쟁이의 부적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뭐 격식이나 규범을 적당히 내려놓고 적당히 망가지고 적당히 어설퍼지는 것이 어쩌면 헤세가 말하고자 하는 거라면 이곳에 끼적인 괴변도 적당히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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