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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DarkRoom/사진.명인.멘토

이폴리트 바야르(1801~1887) - 익사자의 자화상 그리고 씁쓸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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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polyte Bayard, 1840, 10

 

 

이폴리트 바야르의 「익사자의 자화상」은 시끌벅적했던 사진의 태동기를 증언한다. 또 그 신기술로 특허를 따려던 발명가들은 치열한 싸움도 환기시킨다. 바야르는 이 사진은 이면에 이렇게 적었다. <전면에서 여러분이 보는 인물의 시신은 바야르 씨라고, 방금 여러분이 보았고 또 보게 되겠지만 최상급 기법을 발명한 사람입니다. ... 정부는 다게르 씨(초기 사진술 다게레오타입의 발명가 - 옮긴이)에게 과분한 것을 주었지만, 바야르 씨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 했습니다. 결국 이 불운한 사람은 물속에 뛰어들었습니다. 아! 인간 만사 세옹지마 아닙니까! ... 앙드레 루이예 《프랑스의 사진, 문건과 논쟁, 1816~1871》64쪽

《논쟁이 있는 사진의역사》 22쪽 발췌문

 

1839년 8월 19일은 프랑스와 전 세계로 사진의 발명 - 다게레오타입 - 에 대해서 공표한 날이라고 합니다. 동판에 은을 입혀 뭐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찍었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최초의 사진이 아닌 이 사진을 소개한 이유는 그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 사진뒤에 숨은 흥미로운 역사의 패턴 때문입니다.

 

최초의 다게레오타입 사진, 1837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사진 기술에 대해서 앞다퉈 연구를 하던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학자이자 공화파 의원인 '프랑수아 아라고'는 자기의 친구인 다게르에 손을 들어주었답니다. 지금처럼 종이에 인화를 성공했던 바야르의 작업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관해 일언반구 하지 않고 다게르의 기법을 공표했습니다. 다게르가 그의 친구만 아니었다면 '최초'라는 레테르는 아마도 바야르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실 선명도는 다게르 타입이 더 뛰어나긴 했어도 훗날 역사가 종이에 인화한 사진을 선택한 걸 보면 바야르는 적잖이 억울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런 연출 사진도 찍었겠죠~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에 가려진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크림전쟁 시기에 전장에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시대의 추앙을 받은 사람은 나이팅게일이었지만, 같은 시기에 더 위험하고 열악한 사선에서 더 많은 환자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은 사람은 식민지 출신의 흑백 혼혈이었던 메리 시콜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연선택설하면 떠오르면 다윈도 학계에 발표하기에 앞서 러셀 윌리스라는 사람이 다윈에게 자연선택설의 내용과 일치하는 이론의 검토를 요구했고 학계에 발표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결국 다윈은 고민끝에 공동명의로 발표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더 높은 지위에 있었던 다윈만 기억하게 된 것이죠.


또한, 크로아티아 출신의 가난한 발명가인 테슬라는 더 싸고 강력하고 편리한 교류를 거대기업 'GE'를 운영하는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에게 피력했지만 이미 직류에 막대한 설비를 투자한 에디슨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해버린 일도 있었답니다. 이렇듯 역사 또한 책 속의 텍스트에 불과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왜곡되고 변질되는 지를 알면 세상에 정말 믿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ㅎㅎ

 


사진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Hippolyte_Bayard

 

Hippolyte Bayard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arly French photographer Hippolyte BayardSelf portrait, salt print (1847)Born20 January 1801Died14 May 1887 (aged 86)NationalityFrenchKnown forPhotographyNotable workSelf Portrait as a Drowned Man Hippolyte Bayard (2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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