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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김훈의 <공터에서> 역사의 무게와 트라우마 그리고 살아지는 사람들 그 우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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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국내도서
저자 : 김훈
출판 : 해냄출판사 2017.02.01
 
 
 
 

최근 2년 정도 덮었던 책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대신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과독을 지양하고 부담없는 느린독서를 택했고 익숙해서 편안 작가 김훈의 책에 먼저 지갑을 열었다. 그의 최근 소설 <공터에서>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막상 책속에 펼쳐진 시대가 적잖이 당황스럽다. 근대다. 마뜩잖다. 김훈의 근대소설이라...

 

“나는 아버지와 그 세대를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저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할 순 있었다. 그 고통들이 내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였을 거다” 라고 책을 소개하러 나온 자리에서 작가는 말했다. 그 때문일까.. 책은 쉽게 읽히지만 무겁다. 책장을 넘길수록 웃음기는 사라진다.



'공터'의 공은 빌'空'이다. 사전에 의하면 영어로 emptyunoccupied 를 함께 쓰고 있고 "비어 있""점유되지 않"는 곳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동수가 한국 밖에서 한국을 '거기'라 칭하거나 그의 아들 마장세가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공간이고, 1910년대 일제시대 마남수의 시대부터 그의 아들 마동수 그리고 또 그의 아들 마장세까지 작가 김훈이 늘 봐오던 건너편의 시간이다. 그 공간에 그 시간이 더해진" 시공, 즉 허물이자 아픈 한국의 근대 역사다. 거기쯤이 작가김훈이 말하는 '공터'일까..

 

남서태평양의 섬들이 무수하다. 각각의 말을 사용하는 원래의 주민들인 원주민이 살다가 배타고 들어온 외부세력에 지배를 받다가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하면서 이나라에게 지배를 받기도 하고 저나라에게 지배를 받기도 한다. 한 술 더 떠 세계가 편을 짜 전쟁을 두 번씩이나 벌이면서 피바람이 피해간 섬은 없었다. 세계의 사람들이 싸우다 죽었고 원주민들도 죽었다. 싸움에 진쪽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 내려 죽었고 이긴 쪽은 다른 쪽에 이기려다 죽었다. 전쟁이 끝났으나 세력의 지배가 편안하여 독립을 포기하는 나라가 생겨났으며 작은 섬들을 수습하여 기회가 되어 독립한 나라도 있다. 이렇게 얽히고 섥혀 수 십가지 말을 사용하는 또 다른 공터가 남서태평양의 무수한 섬나라다. 마장세의 공터이다.


비슷한 시공을 다루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있다. 아플 겨를도 없이 악착같이 살았던 우리의 아버지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들, 결국 그들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면서 어깨에 짊어지고 부흥을 이끌었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면 <공터에서>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역사에 짓눌린 그래서 트라우마에 허덕이는 무기력함을 김훈 특유의 허허로운 문체로 끌고 나간다. <국제시장>이 능동적이라면 <공터에서>는 수동적이고 전자가 '악착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저 살아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장세는 감방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 다가왔다. 수염이 자랐고 몸이 말라서 옷이 헐렁했다. 걸음걸이가 끌리는 듯했고 나이보다 한참 늙어 보였다. 마차세는 멀리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듯한 환영을 느꼈다. 어느 변방을 겉돌고 헤매는지, 두어 달 만에 한 번씩, 겨울이면 새벽에 기침을 쿨럭이며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장세의 걸음에 옮겨 와 있었다.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다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인가."


마장세가 마동수인가? 마동수가 마차세인가? 뗄 수 없는 걸 떼려했고 끊을 수 없는 걸 마장세는 끊으려 했구나. 그걸 얘기하고 싶어했구나. 싶다.

 


전체적으로 무겁지만 가쁜 호흡없이 밋밋하게 읽히고 시간 공간 등장인물들 간에 플롯은 베타랑 대표 작가답게 매끄럽다. 간난이나 죽어가는 마동수의 생식기 묘사는 다소 억지스런 사족같다 느꼈고, 김훈 시그니처라 할수 있는 구어체는 근현대에서 다른 글과 섞여 조화로운 화음을 내지는 못하는 듯 하다. 자고 나면 들판에 시체가 쌓여 파리가 듫끌던 고을마다 나라였던 먼 가야국 우륵이 내 뱉는 말과 남한산성안에 갇혀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신하들이 내뱉는 말 그리고 마씨 가족과 박상희가 내 뱉는 말이 모두 같은 결을 타고 있다. 김훈의 구어체는 갓을 쓴 사람이 내뱉는 말에 특화되어 있다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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