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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저자 : 김훈
출판 : 문학동네 2015.09.30







1.
작가 김훈은 요즘말로 '인생작가'중에 한 명으로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 작가이며 그의 작품이라면 일일히 손으로 꼽으며 찾아서 챙겨보는 몇 안되는 작가중에 한 명이다. 김훈의 산문집이나 소설을 읽고 서평나부래기라도 끼적일때면 은연중에 김훈 특유의 필체가 나오기도 하고 그럴때마다 마치 글쓰기의 오묘한 물결 한가닥을 잡고 중심을 잡고 서핑을 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있었다. 이를 테면 아마추어 탁구선수가 프로선수와 드라이브 연습을 할 경우 실력이상의 경기를 하게 되고 그 때 느끼게 되는 착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아마 대다수의 서평을 남기는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그러한 기분 좋은 '착각'때문이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김훈과 관련된 작품이나 기사등을 꼼꼼하게 챙겨 읽는 습관이 생긴 것이 말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라면을 끓이며>는 구입하고 내리 읽지 못하다 흐지부지 되었다가 꽤 긴 시간이 흘러야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과독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나 정점을 찍고 내리막 곡선에서 선택한 책이고 거기에 산문집의 특성상 한 두편 끊어 읽게 되어 그렇다고 변명해본다. 사실 <라면의 끓이며>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이전 수필집이나 소설에서의 느낌에 비하면 부족하다랄까..라는 변명도 조심스럽게 보태본다. 뭐 상대적이니 독자마다 다를것이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이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산문은 글쓴이의 사유에 대한 부유물이다. 김훈은 늘 경게를 나누고 경계의 이쪽과 저쪽의 풍경과 상처를 살피고 그것에 대해 처절하게 사유한다. 그 처절한 사유가 김훈만의 독특한 색깔이 더해져 소설이나 산문등에 녹아든다. 부유물은 불완전하다. 완전은 신의 영역이고 인간은 중언부언할 뿐이고 인간의 영역에서는 굳이 그러한 중언부언한 김훈의 글로 위로 받는 사람이 있다면 상처 받는 사람도 있겠고 위로와 상처의 경계를 작가 김훈은 살펴야 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해본다.


2.
작가 김훈은 서민이고 서민음식을 먹는다. 서민음식은 쓸쓸하다. 작가로서 여행과 답사가 생활이 되고 밥벌이가 되면서 늘 혼자서 식사를 한다. 때가 되면 허름한 간판의 음식점을 찾아 혼자서 끼니를 해결한다. 지겹다고 밥벌이를 그만 둘 수 있을까? 허름한 분식집 안에서 홀로 쓸쓸하게 먹는 라면이 앞 테이블에서 홀로 식사하는 사람을 쓸쓸하게 하고 그런 생각에 작가 또한 더 쓸쓸해진다. 출출한 저녁에 라면을 끓여 냄비채 먹다가 이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쓸쓸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다행이 필자 앞에는 테이블이 없다.



3.
김훈은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않았었다. 필자가 느끼기엔... 그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필자의 기억엔 세월호 사건을 즈음에서 작가 김훈은 작심한 듯 언론에 등장했다. 대부분의 작가는 경계에 머물지만 그것은 옳지 못하다. 언젠가는 택해야 할 것이다. 다만 '어리석은 언동'이 아닌 약한 '펜'을 들고 가시밭길을 앞서 가기를.. 그것이 문학가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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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발행하는 지금 필자는 《공터에서》를 읽고 있다.  일종의 의무감이면서 의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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