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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박범신의 《은교》 - 왜 갈망(渴望)은 파국을 부르는가? - [2012년 4월 알라딘 이달의 TTB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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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문학동네

 

 

은교. 아, 한은교. 불멸의 내 ‘젊은 신부’이고 내 영원한 ‘처녀’이며,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 애처롭게 발밑을 밝혀주었던, 나의 등롱 같은 누이여.
 
- 적요(寂寥)


 
 낡은 코란도 승용차가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갑니다. 앵글은 곧 운전석으로 바뀌고 서지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됩니다. 눈물로 범벅인 얼굴은 비통함이 가득합니다. 눈물에 이지러진 서지우의 시야에 느닷없이 트럭이 나타나고 서지우는 피하려다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칩니다. 자동차는 폭발합니다. 조금은 판에 박힌 영화의 첫 장면이 떠오릅니다.


적적하고 고요하다는 뜻의 적요(寂寥))라는 필명을 내걸고 평생을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포장하며 살아왔던 시인 이적요와 타고난 능력은 없지만 문학에 대한 꿈은 버리지 못한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 그리고 그 사이에 문제의 은교가 등장하면서 그녀를 두고 벌이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심리적 전쟁을 다룬 드라마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삼각관계인데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이적요와 요즘 말로 돌씽(이혼남)으로 30대 후반의 서지우 그리고 17세의 고등학생 은교의 다소 不倫적인 나이입니다.


소설은 두 개의 시간과 세 명의 화자(話者)가 존재합니다. 이적요가 죽고 Q변호사가 그의 죽음을 처리하는 현재와 은교가 처음 등장하는 노트 속의 과거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이적요의 노트와 서지우의 노트가 각각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적요 선생과 서지우의 심리적 대립이 소설의 큰 갈등입니다. 그 갈등은 은교가 등장하기 이전 서지우가 이적요의 도움으로 등단하면서부터 예고되었으며 은교는 단지 그 갈등의 씨앗에 불쏘시개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는 <법구경>의 말처럼 미워하는 마음의 기운은 결국 스스로에게 악이되어 자멸하게 됩니다. 서로가 가까이 의지하던 관계에서 자라난 녹일수록 무섭게 자라는 악성일 겁니다.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이적요 선생은 그만큼 서지우를 의지했지만 결국 그에게 죽음을 집행하도록 했던 건 그가 평생 쌓았던 삶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적요라는 필명을 내걸고 스스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 자체가 허식이었습니다. 그렇게 60평생 쌓아왔던 담을 서지우가 10년 동안 더 쌓지 못하도록 애써 막았고 은교의 등장으로 공고했던 그 담은 결국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은교는 서지우와의 정사(情事)를 유지하면서도 크게 죄의식을 갖지 않는 등 다소 건강하지 못한 심리상태를 소유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적요의 집에서 청소일을 하면서 은교에게 이적요는 가족이었고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생물학적인 통념상 늑대가 될 수 없으며 그만큼 은교의 행동은 더 자연스럽고 대담했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두고 고독함이 삶의 기치였던 이적요에게 그런 살가운 은교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습니다. 너무 공고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적요의 성은 파도에 쓸리는 모래성처럼 허망하게도 그렇게 조금씩 무너져갔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소설의 후반 부, 이적요가 뒤에서 안았을 때 은교는 원한다면 키스를 해도 좋다는 말을 합니다. 키스의 의미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이적요를 노트를 본 후 은교는 이적요 시인의 자신을 그렇게 갖고 싶어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그에게 몸을 허락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며 오열하는 대목과 비교하여 약간의 괴리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은교가 이적요를 대하는 모습에서 결코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정신적인 의지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적요가 죽은 후 은교의 말은 수긍이 가지만 전자는 다소 비약적인 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범신은 작가의 말에서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낀"다고 쓰고 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 또한 꿈틀대는 욕망이 있으며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쓰면서 살다가 한순간 무너지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봅니다. 우리의 예상대로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쓸쓸한 결말을 보여주지만 은교와 함께 했던 날들이 이적요 본인에게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삶이었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자 하는 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곧 영화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섬세한 텍스트의 심리적인 묘사가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급합니다. 한편으로는 두사람 사이의 갈등의 중심에 은교가 있지만 은교가 이 소설의 전체는 아닙니다. 따라서 은교에게 너무 많은 프레임을 할애되지 않았으면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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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알라딘 이달의 TTB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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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면서..
이 책은 영화화 되기 한 참 전에 읽고 썼던 서평입니다.
책을 읽고 상상하는 것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르고, 영화는 감독이 책을 읽고 해석한 것에 각색을 더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는 것입니다.
큰 맥락은 비슷하겠지만, 감동의 포인트는 완전히 다르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은교 영화는 지금은 좋아하는 배우 김고은만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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