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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 훗날 나만의 바람 같은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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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청어람미디어

 

   

 "······저는 일본에 사는 호시노 미치오라는 학생입니다. 책에서 그 마을 사진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 생활에 흥미가 많습니다. 방문하고 싶지만, 그 마을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으니, 모쪼록 어느 댁에서든 저를 받아주실 수 있을런지요. ······ 답신을 기다리겠습니다. 234쪽"





도쿄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알래스카의 쉬스마레프 마을 풍경은 한 청년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는 곧 그 마을을 수신으로 위와 같은 편지를 띄웠고 그렇게 알래스카와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이 책은 1989년 《주간 아사히》에 일 년간 연재한 원고를 손질하고 새로 쓴 원고를 보태서 묶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찍은 사진은 물론이고 특히 잔잔하지만 강한 아우라를 내뿜는 필력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어쩌면 일본인이 아닌 알래스카 인으로서 그 땅 위에서 오롯이 숨 쉬었기에 더해진 아우라라 생각됩니다.


알래스카로 온 사람 중에는 자신 만의 공기를 가지고 다니며 남에게 옮기는 선교사, 상인, 광산업자, 생물학자, 교육자 따위의 사람들은 고집스러우며 늘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버리고 그 지역의 공기를 원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단 알래스카뿐이겠습니까. 불교의 '진광불휘'라는 말이 있듯이 언제나 진정은 드러나지 않음 속으로 숨는 법임을 이 책에서 다시금 확인합니다.


휘몰아치는 자본주의 돌풍에 휩쓸려 흔들리는 가치관 급기야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알래스카의 젊은 영혼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춥지만 아름다운 곳으로만 여겼던 알래스카의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되어 유익했으며 나아가 그저 표표한 모습으로 서서 목도하고 기록하는 것에 대한 작은 호시노의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사진가로서 그의 열정 또한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여행하는 자의 타고난 팔자일까요. 카리부 떼의 이동을 쫒아 2달 동안 홀로 야영을 하는 대목은 추위는 물론이거니와 고독과 공포와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는 보통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록된 사진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담담하지만, 오히려 오래도록 눈길을 붙들게 합니다.



"자연을 찍는 사진가 중에도 사진을 하나의 상품으로 자연 속에서 오려내서는 소비자인 독자 앞에 여봐란듯이 득의에 찬 얼굴로 내미는 사람이 많다. 솜씨가 좋으면 그래도 사람들의 눈을 만족시키지만, 눈길은 가도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없어서 끝내는 잊혀지고 만다. 예술품과 상품의 경계선이 어디쯤에서 그어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호시노 씨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기에 하는 무엇가가 존재한다. 253쪽" 라고 추천사를 쓴 오오바 미나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아이캔디(eyecandy)한 사진을 얻기 위해 생태계를 파괴해서 논란이 된 우리나라의 일부 생태사진가들에게 이 책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를 알고 귀를 기울여 3만 6천 년 전의 바람 소리를 느끼며 토착민과 함께 호흡했던 호시노는 결국 촬영 도중 곰에게 습격을 당해 죽게 됩니다. 호시노는 이야기합니다.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시 자연인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마저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름답고 잔혹하고, 그리고 작은 것에서 큰 상처를 받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강하고 연약하다.(244쪽)" 안타깝지만, 그의 죽음도 결국 아름답고 잔혹한 자연의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호시노 마음속 필름을 루빼로 들여다본 느낌입니다. 가슴 따뜻한 문구를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음독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태깅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한마디 하게 됩니다. '이 책 참 멋지지 않은가!'라고 말이죠. 훗날 나만의 '바람 같은 이야기'를 꿈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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