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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외" - 사진,영화의 등작으로 아우라는 예술의 본질이 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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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아우라(Aura)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서두에 수록된 옮긴이(최성만 교수)의 자세한 해제가 좀 어렵긴 했지만 그것이 도움이되었는지 실제 발터 벤야민(Valter Benjamin, 1892~1940)의 논문인 제2판과 제3판 그리고 함께 수록된 작은 논문인 <사진의 작은 역사>까지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해제에서 미리 정리되어 있고, 제3편은 제2편을 다듬은 거의 흡사한 내용이며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도 상당 부분 중복되는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번을 읽었지만 자연스럽게 중복되기 때문에 점차 윤곽이 드러났고 인상 깊었던 문구들을 다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정리에 도움이 된 듯합니다.



먼저 논문 전체에 걸쳐 이해를 해야 하는 개념이있는데 아우라(Aura)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전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독특한 기운'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라 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복제는 곧 이 아우라의 실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우라의 실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애매한데 다시 설명하겠지만, 기술복제를 통한 예술작품의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예술을 바라보는 본질, 즉 아우라의 실종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에서 현대 사진사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는 으젠느 앗제와 아우구스트 잔더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를 미루어 보건대 결국은 본질의 변화에 발맞춰 아우라는 사라져야 하는 것으로 논지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벤야민의 이러한 논문들을 기초로 해서 현재의 예술작품 - 복제품으로 소통하는 - 이 예술작품일 수 있는 기반이 다져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으로 논지의 큰 흐름을 짚어보면 원시 예술부터 진행된 시간이라는 큰 틀에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주술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진 꼭꼭 숨겨지기를 원했던 초기 예술적 형상들은 제의가치(祭儀價値, Kultwert)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고 이것이 예술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한 형상들에 온전히 서려있는 아우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전시가치(展示價値, Ausstellungswert)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때의 작품은 한 명 혹은 극소수의 사람들의 관람만 요구되었습니다. 초기 회화가 이에 해당하며 아우라의 가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것은 늘 사람들이 모방할 수 있었"듯이 "그러한 모방은 예술 실기 연습을 하려는 제자들에 의해, 작품을 널리 보급하려는 장인들에 의해, 마지막으로는 이윤을 탐하는 제3자에 의해 수행되었"고 1차적인 복제가 일어납니다. 이로서 아우라가 사라집니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사진이 발명 되기 전이라는 점 - 사진과 회화의 싸움관점에서 - 입니다.


좋은 것을 보면 더 "가까이 끌어 오고" 싶은 것이 사람이라면 갖게 되는 인지상정, 그러한 열망은 메조틴트 기법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점차 현실이 되었고, 마침내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래 알려졌던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두운 방, 카메라의 전신) 속의 상들을 고정"시키려는 경쟁적인 노력의 결과 다게르에 의해 카메라가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예술작품의 복제는 극소수의 관람에서 '대중'으로 전환이라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19세기 사진의 발명을 두고 앞다투어 개발에 열을 올릴 시기에 한 국수주의 언론이었던 <라이프치히 신문>의 기사를 보면 그 시대적 전환에 대한 위기의식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데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 찰나적인 영상을 고정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독일에서 철저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그런 것을 바라는 마음 자체가 이미 신성모독이다.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신의 상은 어떠한 인간의 기계를 통해서도 고정시킬 수 없다. 기껏해야 신적인 예술가가 신성의 영감에 감동되어 신과 같은 인간의 특성들을 지고로 신성한 순간에 그의 천재의 고귀한 명령을 받아, 어떤 기계의 도움도 받지 않으면서, 재현할 엄두를 낼 수 있다." 156쪽


즉 사진의 발명으로 예술의 위기가 찾아온 것과 무관하게 시대의 흐름 즉, 존재 자체에서 의미를 찾던 것에서 한 두 명 그리고 결국은 '대중'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이 가장 큰 핵심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우라는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바꿔말하면 현재 작품에서 아우라를 느끼는 건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와는 다른 의미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아마도 롤랑바르트가 말한 스투디움과 푼크툼의 개념을 뒤져봐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철저하게 '유물론'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다양한 팩트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사진과 영화에 관한 내용 이를테면, 회화와 사진의 싸움을 바라보는 시각과 영화와 연극에 대한 벤야민의 분석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통찰력있는 글들이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벤야민의 <채플린> <미키마우스에 대해> <연극과 방송> 등의 작은 논문을 함께 수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회화와 사진에 관하여 좀 더 이야기하자면 "다게르가 카메라 옵스큐라의 영상들을 고정하는 데 성공한 순간 화가들은 사진기술자들로부터 작별인사를 받았"고,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풍경화가 아니라 소형 초상화였고 수많은 초상 화가들 대다수가 직업사진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의 사진 기술이 제법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받은 예술적 수련 덕분이 아니라 바로 수공업적 수련 덕분이었다고 말하며 예술과 기술을 분리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독일의 정치인인 베르나르트 폰 브렌타노(?)는 "1850년에 사진사는 그의 도구와 동일한 수준에 있었다"고 한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 수전 손택은《사진에 관하여》에서 "사진은 여러 면에서 회화를 부정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화가들은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 라고 말했던 웨스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진 덕택에 정확한 재현이라는 지루하고도 따분한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회화는 좀 더 수준 높은 과업 -- 즉, 추상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 "라고 1930년대 화가들의 지나친 방어를 완화할 목적의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벤야민은 이후 그러한 초상 전업사진가들에 의한 초상 사진 시대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 인물로 으잔느 앗제(Eugène Atget, 1857–1927)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제의 공적은 "대상을 아우라에서 해방시켰고 그렇게 해서 사진이 수행할 수 있는, 시대에 진정으로 부응하는 기능에 대한 물음을 촉발시킨데 있다."라고 했습니다. 즉, 초기 초상사진들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아우라를 제거한 이유로 앗제를 높이 평가합니다. 이 대목에 이르러 아우라는 온전히 제거(해방)해야 될 요소로 벤야민은 못 박고 있습니다. 첨언하자면, 초기 초상사진에서 아우라가 존재하는 이유로 초상사진의 제의적 가치를 들고 있습니다. 잔더는 앗제가 인물을 배제해서 아우라를 제거한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회질서에 상응하는 다양한 계층의 초상사진을 단지 관상학적인 목적으로 찍음으로써 제의적 가치를 없앤 점을 들고 있습니다. 잔더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연구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벤야민은 예술작품과 관련해서 끊임없는 논란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글로써 매체기술의 발달 특히 사진과 영화의 등장으로 대중적인 예술로서 더는 아우라가 예술의 본질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 에세이집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벤야민은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다. 따라서 유물론적 예술이론을 펼쳤으며 이 에세이가 역사철학적인 면에서 모델적 성격을 띤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의 대안을 막시즘에서 찾았던 벤야민은 훗날 스페인 국경에서 모르핀을 먹고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Valter Benjamin, 1892~1940

 

 

[관련 글]

 

Walter Benjamin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German cultural critic, philosopher and social critic Walter BenjaminBenjamin in 1928Born(1892-07-15)15 July 1892Died26 September 1940(1940-09-26) (aged 48)Cause of deathSuicide by morphine overdoseEducationUniversit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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