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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김훈 《공무도하公無渡河》 - 비루한 인간사 고루 훑고 지나가는 바람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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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지음/문학동네

 

숨 막히게 내리읽고 보니 새벽입니다. 책을 덮고 창문을 열어 찬 새벽 공기에 큰 숨을 실어 보냅니다. "사는 게 뭐 다 그런 거지······ ." 혼잣말로 내뱉어봅니다. 한동안 운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한결같을까······ 처음부터 김훈이라는 이름 두 글자는 허허로움이고 남쪽 바다 수평선 너머의 아득함이었습니다. 그 허허로움에 중독되어 오늘도 그의 글로 공허함을 한숨으로 채우고 위로받습니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白首狂夫)와 그의 처(妻)는 짧은 탄식과도 같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남기곤 혼백이 되어 강의 저편으로 건너갔습니다. 김훈은 이 책에서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백수광부가 어인 일로 강을 건넜는지는 알려진 바 없고 다만 그 광경을 목격한 뱃사공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아내인 여옥(麗玉)이 공후(箜篌)를 끌어안고 눈물로 애도합니다.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 여옥의 노래

 

 

강의 이쪽은 삶이고 저쪽은 죽음일 텐데 죽음에 이르지 못하고 마지못해 사는 이쪽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싶기도 했습니다. 인생사 허허로움에 관하여 말이죠······ . 해는 그 자체로 빛나면서 그늘을 만들기에 허허롭고, 굳이 해를 따라 낮을 살아도 밤이 따르니 무기력한 한숨만 가득합니다. 그늘을 보지 않겠다고 눈을 가리니 또한 어둠이 있음을 참지 못함에 백발의 노인이 미쳐 강을 건넌 건 아닐까 싶습니다.



강의 이쪽에서 김훈의 망막에 명멸하는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내 그늘진 맘 속에 있는 것들이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고 그것들이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불타는 백화점에 들어갔다가 보석을 주머니에 넣고 나오는 소방관 박옥출과 죽은 아이의 보상금을 받아 사라진 방천석은 앙앙불락(怏怏不樂)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매일 눈 뜨면 만나는 세상엔 그 비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원 화장실엔 여전히 장기를 밀매하는 전단지가 나붙고, 베트남에선 신부가 공수되어 옵니다. 곳곳에선 피켓을 들고 군중을 이루어 목소리를 높이며 개에 물려 죽은 아이의 도망간 엄마도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념은 손쉽게 전향할 수 있는 것이어서 내일 딴 목소리를 낼 수도 있는 것이 누구의 모습이 아닌 우리들 자신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자리 밖에서 보는 김훈의 글은 바람이고자 합니다. 비루한 인간사 고루 훑고 지나갑니다. 바람은 그냥 지나가지만 김훈은 이렇게 글을 남기니 애증의 바람입니다. 뱃사공 곽리자고는 백수광부의 도하(渡河)를 아내인 여옥에게 이야기하고, 신문기자 문정수는 이목희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바람 같은 이야기는 독자에게 전해집니다. 이목희는 내려버두라고 했으니 눈물로 애도하며 공후를 타던 여옥의 몫은 우리 독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의미심장한 말을 아래에 옮기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마무리 합니다.

 

 

작가의 말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2009년 가을에 
김훈 쓰다  

 

 

 

 

공무도하

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공무도하는 작가로서보다 기자로서 더 많이 살아온 김훈이 기자의 눈으로 보고, 작가의 손끝으로 풀어낸 우리 삶의 이야기다. 첫 장편 빗살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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