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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ketch

[서평] 공지영 《높고 푸른 사다리》- 전쟁 그 아수라의 되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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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지음/한겨레출판

 

공지영의 소설은 처음이다. 하지만 공지영을 모르지는 않는다. 자기말 할 줄 아는 작가로 기억한다. 노이즈를 관심으로 부합하려는 속내는 모르겠고 다만 특정 다수의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자기 목소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공지영을 멋진 사람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좌우든 상관없지만 그게 이문열과 같은 어용의 범주하고는 조금 결이 다르다 -.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러한 기대는 우호적으로 작용했고 《높고 푸른 사다리》를 펼쳐 든 이유가 작품성을 떠나 그러한 기대감이 작용했음을 감추지는 않겠다.



이 책은 종교적이고 시대적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전쟁을 몸소 겪은 이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내 모든 소설의 서술들은 아주 작은 각색을 제외하면 고스란히 사실이며 실은 내 전언보다 훨씬 더 극적인 일들이 그 안에 잉태"되어 있다고 공지영은 작가의 말에서 술회하고 있듯이 이 책을 빌어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는 아수라와 같은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전쟁' 그 자체일 것이다. 요한 수사의 할머니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죽음의 숫자 같은 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다. 큰 경지에서 본다면 가만 놔두었어도 그들은 이미 거의 다 죽었겠지.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전쟁이 우리에게 유혹하는 것이다. 모든 강한 악의가 그렇듯 전쟁은 우리에게 모든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선의를 빼앗아 간다. 생명의 보존이 모든 것에 앞서게 되면 인간은 순식간에 짐승으로 변하고 이 세상은 순식간에 아수라 지옥으로 변한단다. 나는 거기서 지옥을 보았단다. 하느님이 설사 죽어서 나를 지옥에 보내신다 해도 전쟁을 겪은 인간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을거다. (중략) "

 

아수라의 한복판을 건너와 지금은 냉면 체인점의 사장으로 잘살게 된 요한 수사의 할머니는 스스로 갑각류가 되었다고 했다. 갑각류의 딱딱한 피부는 "웬만하면 찔리지 않지만 한 번 찔리고 나면 그것을 빼낼 방법이 없"다. 전쟁은 작은 생채기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어 진화의 우위에 있는 포유류를 갑각류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고 작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목하 포유류로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아 위태위태하다. 공지영은 이것을 경고하고 싶어 애써 그 아수라의 기억을 들춰낸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사랑은 전쟁과 나란히 하고 있다. 하느님과 요한 수사 그리고 소희에 이르는 사랑은 종교와 세속적인 사랑을 구분하는 듯하지만 결국 보다 큰 의미의 사랑에서 귀결된다. 한국에서 죽을 만큼의 고초를 겪고 독일로 돌아갔지만 다시 한국을 찾고 한국에서 생을 마감한 신부들에게 작가는 '아니 왜?'라고 질문을 던졌고 결국 '사랑'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요한과 소희의 관계가 불편하다. 뭐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초반 주가 되었던 요한과 소희의 사랑앓이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객으로 전락하면서 뭔가 매끄럽지 못함을 느낀 것 같다. 해서 인간 공지영이 아닌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느낌은 좀 더 뒤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장편소설. 한 젊은 수사의 사랑과 방황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요한이 소희를 만나 사랑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통은 왜 있는 것이며, 인간은 왜 존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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